이하 초기불전연구원
초기불교의 관점에서 보는 천도의식(여유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묻고 답하고 모음
[질문] -------------------------------------------------------------------------------------------- 초기불교의 관점에서 보는 천도의식(좋고,나쁘고가 아닌)에 대한 견해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 [답변]: 초기불교의 관점에서 보는 천도의식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위해서는 초기경에 나타나는 몇 가지 사실에 대해서 언급해야할 듯합니다. 먼저, 초기경들은 해탈/열반이라는 불교의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근본적인 가르침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초기경들이 거의 대부분 출가 비구들이 합송을 통해서 전승해온 가르침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직접적으로 천도나 제사의식에 대한 설명은 없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초기경의 여기저기에 부처님이나 비구들과 여러 신들(천신, 목신)과의 대화가 다수 나타납니다. 이들이 부처님이나 비구들에게 질문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 상징적인 가르침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볼 부분은 아니라고 봅니다. 만일 이런 가르침을 상징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사실로 본다면 부처님이나 출가자들을 통해서 여러 종류의 신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요즘 절에서 하는 천도(제사)의식은 그 자체가 부처님이나 옛 큰스님들이 남긴 법문을 하는 것이 핵심중의 핵심입니다. 이런 법문을 듣고 영가들이나 조상신, 아귀 등이 얽힘을 풀고 더 수승한 길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 천도의식의 핵심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것은 초기경의 여러 신들과 부처님이나 비구들의 대화는 공통점이 크다고 봅니다. 특히 주석서에 의하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숫따니빠따의 자애경(Mettasutta)은 어떤 지역에 사는 목신(木神) 혹은 지신(地神)들에게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지역에서 안거를 할려던 비구들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자 부처님께서 이 자애경을 비구들에게 설하셔서 비구들이 이 경을 암송하여 그들의 마음이 자애롭게 되어 해코지 하지 않게 되고 그 지역을 평화롭게 하였다고 전합니다. 그 외 몇 몇 숫따니빠따의 경들이나 중부 등의 빠릿따(보호주) 경들도 여러 신들을 평화롭게하고 불자들의 삶을 평화롭게 하는 경들로 전승되어오며 이런 빠릿따들은 남방에서 신도들이 아주 많이 암송합니다. 영가 혹은 영혼의 문제는 초기경들로 보자면 아귀계로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아귀계는 빠알리로 petti-visaya(peta-visaya)인데 petti는 산스끄리뜨로 paitri인데 아버지를 뜻하는 pitṛ(Pāli. pitā)의 곡용형입니다. 그래서 일차적인 의미는 ‘아버지에 속하는’의 뜻이며 여기서 아버지란 물론 모든 돌아가신 선조들(Sk. pitarah*, 祖靈)을 뜻합니다. 그리고 초기경에는 petti-visaya보다는 단지 peta로 많이 나타나는데 이 단어 역시 아버지를 뜻하는 pitā의 곡용형으로 ‘아버지에 속하는’을 뜻하며 그래서 모든 조상신들을 뜻합니다. petti-visaya나 peta는 베딕 문헌에서 나오는 조상신들에게 제사지내는 것(Sk.pitṛyajña)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굶주린 귀신(餓鬼)’으로 불교에서 정착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귀는 항상 배고픔이나 목마름 혹은 다른 괴로움을 겪는 존재라고 주석서에서는 말합니다. 주석서에서는 아귀는 그들이 사는 영역이 따로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숲이나 습지나 묘지 등 인간이 사는 세계에 같이 산다고 합니다. 물론 인간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고 천안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요즘의 천도의식도 거의 대부분 조상신에게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들의 법문을 베풀고 음식을 베풀어 그들이 선업도로 나아가게 하는 것인데 이것은 초기 가르침과 주석서의 설명과 일맥상통한다 하겠습니다. 한편 구사론을 위시한 북방 아비달마에서는 한생이 죽음의 마음으로 끝나고 다음생의 시작인 재생연결식이 생기는 중간의 단계로 중유(中有, antra-bhava) 혹은 중음을 인정하는데 이러한 중음의 상태에 있는 존재들에게 법문을 설하여 선도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천도의식이라고 북방아비달마의 관점에서 분명하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한편, 종교문화를 통해서 보자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종교는 인간의 삶에서부터 죽음과 사후에 이르기까지 특정한 의례의식을 거행하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예를 들면 유교문화는 관혼상제(성인식, 결혼식, 장례식, 제사)를 인간이 행하는 중요한 의례의식으로 들고 있고 힌두교에서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제사의식까지 한 인간이 거쳐야하는 의례의식을 모두 18가지로 규정하여 지금도 정통힌두들은 아주 중시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도 태어나서 죽고난 사후까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불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특히 불교문화는 초기에는 빠릿따(보호주)가 기본이었고 특히 불교가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중국 한국 일본으로 전승되면서 각 지역의 문화전통과 습합되어서 독특한 불교문화를 형성하였습니다. 아무튼 우리 불교의 천도의식은 초기경의 천신 목신 지신들과의 대화와 빠릿따(보호주)와 뻿띠 위사야(아귀계, 혹은 조령계)의 언급, 그리고 주석서에 나타나는 여러 신들과 아귀계(조령계)의 언급 등을 통해서 충분히 초기불교와 연결지을 수 있다고 봅니다. 대충 질문에 답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각묵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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