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통/목탁소리

불교의 우주론에 대한 담론

우공(友空) 2010. 1. 31. 01:56

불교의 우주론에 대한 담론
2009.08.23 22:15
http://tong.nate.com/minervaowl/49576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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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 불교의 우주론에 대한 담론




신행상담에 올라온 질문 중에서
우주의 생성, 태초의 우주 등과 관련하여
빅뱅우주론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요,
그에 대한 법우님들의 답변과 또 다른 질의문답들이
아주 흥미있고 아름다운 담론으로 오고가는 것이 있어
옮겨 드리면서 아울러 제 답변도 올려드립니다.

이런 도반들 서로간의 문답들이
아름다운 법담으로 이어져
법우님들의 공부에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깨어있는 담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한 가지 당부를 드린다면,
질문 답변을 하시는 분들께서는
질문도 그렇고 그에 대한 답변도 그렇고
사심을 완전히 배제하고
감정을 섞지 않으면서
최대한 정중하고 겸손하게 법론들을 오고갔으면 하고 부탁드립니다.

[질문]

>현재 현대물리학에서는 빅뱅우주를 정설로 받아 들이고 있읍니다.
>그와 관련해 올해는 미국의 과학자가 노벨상까지 받구요.
>천체 관측 상에도 우주의 은하간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그로 추론해볼 때 우주는 원자보다 작은 점에서 시작을 했다는군요.
>마치 폭죽 놀이 처럼 ' 뻥 '하고 터진 이후 이 우주는 팽창을 계속하고 있답니다.
>불교는 가장 과학적인 종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교적인 입장에서 볼때 이 시작이 되는 작은 점 즉  '극점' 은 ' 불성' 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실제 다석 유영모 선생님의 경우에 이 같은 표현을 했읍니다.
>아무것도 없는 공의 상태, 하지만 꽉 차인는 상태....불성 이 아니겠습니까.
>
>근데 제가 궁금한 것은 왜 이 폭발이 이루어 졌을까 입니다.
>과연 우리의 업의 시작은 그 때 부터가 아닌가 보는데
>그 폭발, 그리고 우리의 업의 시작은 왜 처음에 일어났을까요.
>모든 것이 공인데 과연 어떤 계기가 있어서 시작이 됐는지 궁금한데요.
>그 계기가 없었다면 우리가 이 미망에서 시달릴 필요가 없는 일 아닐까요.
>굳이 우리가 지금 불성을 찾겠다고 이 힘든 수행의 길을 가지 않아도 되지않겠습니까.
>
>
>가르침을 주신다면 감사하겠읍니다.
>

[일단법우님 답변]

ikhcym님의 글을 읽어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나는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한 믿을 수 있고 받아 들일 수 있다"
법우님께 조금 무례하게 들리겠지만 이런 비슷한 질문을 받으신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으시고 그 유명한 독화살의 비유를 제자들에게 하십니다.
"누가 너에게 독 화살을 쏘아 지금 네가 그 독으로 인하여 죽어 가는데 만약 네가 그 화살을 얼른 뽑아 버리지 않고 이 화살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독은 어떤 종류인가 그리고 어느 방향에서 날아왔으며 얼마나 깊히 박혀 있는가 등등 만약 네가 이런 모든 것을 알기전에는 독화살을 뽑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리석은 자인가, 아닌가?"

불교는 가장 과학적인 종교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과학 그자체는 아닙니다.
그리고 과학은 그 자체가 만고불변의 진리도 아닙니다.
아마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잘 아시리라 봅니다. 결국은 과학도 인간의 인식틀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가장 보편 타당한 근거를 제시 할 수 있는 준거틀/기준이 과학이라고 이해하여야 하며 그 상황이 바뀌면 과학은 다시 다른 준거틀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어떤 현상이 있어 그 현상을 이용하는것이 과학이고 기술 입니까? 아니면 내가 필요한 현상을 임의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과학입니까?

답은 물을 필요도 없겠지요.

마찬 가지 입니다.
과연 법우님 말대로 우리의 업의 시작이 빅뱅이 일어난 시점 부터이고 그 이유를 정확히 누가 알으켜준들 무엇이 달라지나요?
그러면 법우님의 불성 찾기 공부는 일거에 해결이 됩니까?
물론 부처님을 비롯한 수많은 선지식들께서는 혜안, 불안으로 그 이유를 깨치셨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이 나의 수행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우리는 가끔 가장 초보적인 질문을 가장 심오하고 의미있는 질문처럼 착각을 합니다.
그리고 끝없이 지식을 구한다고 하여 그것이 나의 수행에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자]

'일단'님의 가르침 감사하게 받습니다.
지금 급한 독화살을 뽑아내는 게 급선무겠지요.
무리하게 한 말씀 더드리자면 그 독화살을 어떻게 뽑아야 되나 항상
의문이고 답을 구하고자 하는 질문이라고 이해해주십시요.
불필요한 아상을 세우고자 함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의 화두로서 자꾸 파고 든다고 하면 무리일까요?

"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요, 과학 없는 종교는 맹신에 불과하다"
라는 아인쉬타인 박사의 말을 저는 좋아합니다.
그래서 현대물리학에 더욱더 관심을 가지고 해석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근데 참 많이도 맞아떨어집니다.
아인쉬타인 박사도 3000년전에 어떻게 부처님이 이 과학적 사실(현상의 바른 이해)를 아셨는지 경이로워 합니다.

과학이 어떤 사상의 우위를 선점하고 있어서가 아니고
우리가 현상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찾고 확인하고 그럼으로써 불성에 가까이 가려하는 것입니다.

성철스님이나 청화스님 등 많은 분들은 현대 물리학을 언급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그 설명을 듣고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읍니다.
옛날 분들은 이런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요즘 사람들은 더 수월하다고 그 스님들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조금더 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불자로서 불신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을때 어떤 확신을 가지고 설명해 줄수 있고, 또 설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질문드리는 것입니다.
이 자체가 수행의 방편이라고 이해해 주십시요.

[일단 법우님 재답변]

법우님의 답변 감사합니다.
잘 알아 들었고고 또 이해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다시 올리신 물음에도 역시 제가 처음에 드린 답변으로 갈음이 될 것으로 보이는군요.
저는 물리, 화학 등 소위 말하는 과학은 지지리도 점수 안나오던 열등생이었고 지금도 그 쪽 방면과는 큰 관련이 없는 세일즈, 마케팅 전문가 입니다.
청화스님, 성철 스님 두 분 모두 각자 깨치신바를 현대 물리학을 들어가며 법문하신 것 잘 알고 있읍니다. 저도 자주 일고 있읍니다.

또한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여러 현대 물리학의 거장들이 2500여년전에 비롯된 불교가 어찌 그리 현대물리학과 상통하는 지 의아해 하였는지도 그리고 지금도 더 깊이 밝혀지고 있다는 것도 들어 잘 알고 있읍니다.

물론 법우님 말씀처럼 이러한 체계적인 설명을 가지고 불교에 접근하고 또 불교를 소개할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것은 법우님의 확신이고 체계적인 설명이지 곧바로 그걸 듣는 사람이 바로 그대로 확신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불교를 이해하여 곧바로 불성찾기의 지름길로 접어드는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다시 드리고자 합니다.

왜 우리는 상대방에게 어떤 현상에 대하여 설명을 할까요?
학문적으로는 지식의 전수나 이해의 공유이지만 내 자신의 불성을 찾는 이 공부에서는 설명이란 나의 경험과 인식을 그냥 전해줌에 불과합니다.
달리 말하여 위의 대 선지식이나 부처님도 자신의 수행을 통하여 깨치고 보니 일체의 현상에 대한 거침 없는 밝은 눈을 가지게 된 것이지 현대 물리학을 피나게 공부하여 깨치신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다른 말로 그 위대하다는 아인슈타인도 부처님처럼 불성을 찾지는 못하였다는 말입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법우님의 불교에로의 접근 경로는 좀 거칠게 표현하면;
"'아! 현대물리학이 불교의 가르침이 그렇게 맞다고 하는구나! 그렇다면 참 합리적이고 과학적이고 보편 타당한 가르침일 테니 귀의 할 만한 종교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읍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마셔야 할 것은 그것이 잘못되었다거나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단지 그럴 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 어쩔 수 없이 풀어야하는 문제는 내 공부는 밖에서 찾을 수 없고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 쉽고 빠르며(?) 결국 깨침에 이르는 길임은 부처님을 비롯한 선지식들이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어찌 보면 불교의 포교나 설득은 참으로 지난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자신의 미망을 버리기 어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법우님의 수행에 도움이 된다면 저 또한 기쁘겠읍니다만 제 의견이 수행에 도움이 안된다면 이러한 답변은 과감히 무시하여 버리는 것도 또한 수행에 도움이 될 걸로 압니다.

[길상 법우님 답변]

답변이 될지 모르겠지만,, 저도 몇자 적어봅니다..^^

현대물리학의 차원에서 님의 질문에 답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면 거시차원과 미시차원을 아우르는 궁극의 이론, 즉 세계를 해석할 수 있는 통일이론이 완성되지 않은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우주를 설명하는 거시이론입니다. 하지만 원자, 광자의 수준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양자역학의 도움을 받아야만 이 세계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아우르는 통일이론으로 최근 초끈이론이 각광받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진화중인 이론입니다.

즉 님이 말씀하신 빅뱅이 왜 일어난걸까? 나를 비롯한 세상만물은 왜 존재하는 걸까? 하는 의문은 '통일이론' '궁극의 이론'이 없으면 과학적으로도 설명이 안 됩니다. 현재로선 빅뱅이라는 특이점에서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대립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이 대립을 해소시킬 이론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훗날 어떤 천재가 나타나 이 과업을 달성할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현재는 그렇습니다.

따라서 과학의 이름으로는 님의 질문에 아무도 답변해줄 수 없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문을 안고 세상을 살아가지만 독서를 통해 혹은 종교를 통해 자신의 의문에 '스스로' 해답을 찾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물론 깨달으신 분께선 종교의 이름으로 이 의문에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못 깨달은 우리가 과연 그 설명을 듣는다고 해서 이해나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저의 좁은 소견으로는 깨달으신 분이라도 '설명'의 스타일은 다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이 질문의 해답은 A다, 라는 식의 도식화된 공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겠지요.

그래서 책을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최근 '현대물리학으로 풀어본 반야심경' 같은 유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님께도 이런 류의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질문자]

두분의 말씀 매우 감사드립니다.
저도 처음엔 우리 불교가 고루한 기복 신앙 정도 되는 걸로 생각했읍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과학지식으로 설명하시는 스님들의 얘기를 듣고 매력있는 종교로 느끼기 시작했읍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너무나 과학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현대인들에게는 어떤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는 쉽게 관심을 일으키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설명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어서 부처님께서도 비유를 많이 드셨다죠. 지금 부처님께서 살아 계신다면 꼭 그렇게만 설명하진 않으셨을 것 같아요.^^

눈을 감고 한번 걸어보신적있으신지요.
허공을 붕붕나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인간이 하루에 짓는 마음가짓수가 팔억 사천만 가지라고 불교는 얘기합니다. 이 무상히도 많은 마음을 짓고 산다고 하는데...
그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하는 맘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매 순간 순간의 감각은 모두 마음을 일으키는 것으로 현대 의학이 증명을 하고 있죠.
우리가 발바닥에서 부딪혀오는 느낌이 있기 때문에 걷고 있다는 것을 느낄뿐이지 , 시각적인 효과가 없다면 전혀 다른 세계를 느끼게 되더군요...그야말로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을 생각하게 합니다

저는 우리 불교가 너무 예전의 방식만 고집하지 말고
좀더 요즘 사람들이 신뢰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편으로서 과학은 참 좋다라고 생각해서 이런 의문을 짓고, 글을 쓰게 된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민족관이나 애국심은 영화로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심어준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 있읍니다.
기독교도 예수님 이야기를 최근 영화화해서 많은 감동을 일으키고
다시한 번 삶을 돌이키게 만들고, 오래도록 가슴에 남게 하기도 했읍니다.
우리 불교도 한 편의 영화로 그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 낸다면..
색즉 시공이나, 무상함, 진여, 인생에서의 선택과 결과...등등..
을 한편의 멋있는 영화로 , 일류급 배우를 기용해서 방영하면
아마 전 세계가 같이 울고 웃고 느낄 수 있는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입니다.

제가 많이 깨달아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게 아닙니다.
혹여 이런 마음이 전달 되서 영화 한편 멋있게 만들 수 있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바램으로 다시 한번 글을 써봅니다.

모든 분들께 가르침을 받아 다시한 번 감사드립니다.

[일단 법우님]

Ikhcym님 마지막에 올리신 글 잘 읽고 많이 공감합니다.
그리고 한 없이 모자란 조언(?)을 잘 새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신 글에 스스로 질문도 하시고 스스로 답도 내셨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불교는 마음 공부입니다. 그대로 자신의 마음으로 들어가시면 모든 해답은 거기에 있읍니다.
부처님 제세시나 지금이나 생노병사는 여전합니다.
단지 모양과 나타남이 다를 뿐입니다.
다른 많은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발전을 "나아짐"이라고 좋거나 나쁘거나 하는 잣대로 생각하기 쉬운데 근본자리에서 볼때는 모양만 바뀐 '달라짐'일 뿐입니다. 그저 그렇게 그런 모습 방법으로 살아 갈 뿐...

열심히 공부하셔서 성불하시기 바랍니다. 저 또한..

[예하고 법우님 답변]

지금 시점의 물리학계에서는 더 이상 빅뱅이론에 매달리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불교TV[www.btn.co.kr]에 가시면, '현각스님이 전하는 달마어록'이라는 법문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 법문의 제4회(2006.11.28)째 법문을 들어보시면 빅뱅이론이 아닌 현재(지금 시점의) 물리학계에서 주장되고 있는,
스티븐 호킹 박사가 지지하는 새로이 제기된 이론이 있습니다.

아래 내용은 그 법문에서 빅뱅이론과 관련된 부분만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
........
.........

빅뱅이론은 1970년경에 주장된 이론으로 지금은 새로이 제기된 이론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물리학에 반하는 이론입니다만 아주 흥미로운 이론이죠.
특히 불교신자들에겐 상당히 고무적이죠. 어쨌든,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지만요.
새로운 이론을 제기한 많은 과학자중 한 사람이 스티븐 호킹 박사입니다.

'우주는 항상 실재했으며, 주기적으로 생멸을 반복해왔다.'
즉, 한 주기 안에 한 우주가 존재하지만, 그 이전에도 수없이 많은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빅뱅에는 없는 내용이죠.
빅뱅이론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뭔가가 생겨나는 그런 이론이라는 점에서 좀 설득력이 없긴 합니다. 마치 성경의 가르침과 같죠.
'신이 나오기 전엔 뭐가 있었지? 어?'
'어? 이상해..' 그리고 불교로 관심이 돌려지죠.
불교는 다르게 말합니다. 현재(지금 시점의) 물리학이 말하는 것처럼요.

'우주는 항상 일정한 주기로 실재한다. 끝없이 무한한 주기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아주 놀라운 것은 무엇이냐? 저를 믿지 말고, 화엄경을 보세요.
화엄경에 나와있는 내용입니다.
우주는 이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한 이 우주는 긴 핫도그를 떠 올려보세요. 또는 긴 풍선요.
수 많은 우주가 동시에 수평적으로 공존한다고 합니다.
놀랍죠? 무한한 우주.
하나의 우주가 아닌, 무한한 대양과 같은 우주 속의 우주 속의 우주.
이 모든 것들이 끝도 없이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고 불교는, '2500년 동안 말했죠!'

최신을 달리는 현대 물리학에서 이제 겨우 발견하고 논쟁을 벌이고 있죠.

요지는 우리의 성품과 우주의 성품이 같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시작도 없는 다생겁래 이래로 단 한번도 달라진 적이 없다.'
.......
......
.....

더 이상을 들어보고 싶으시다면, 불교TV[www.btn.co.kr]에 가셔서 법문 직접 들어보세요.
참 좋습니다.


[그리고... 법상, 답변입니다.]

법우님의 질문과
그 아래 달려 진 댓글들을 보니
많은 분들이 불교와 더불어 과학에도 관심이
많으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특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좋아하고
또한 그런 사실들을 불교에서도 잘 이해하여
그런 사람들을 포교하는 방편으로 삼아야 할 것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 또한 과학에 대한 공부도
더 열심히 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좋은 질문과
좋은 답변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이런 회상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아마도 법우님 질문의 요지는
그야말로 태초, 최초에 어떻게 인류가 만들어 졌을까
하는 의문이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 의문은
인류 역사를 이어오며 수많은 학자들이
끊임없이 제기해 왔고,
풀고자 애써 왔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요즘 빅뱅론이 언급되는 시점에서
그 질문이 빅뱅론의 과학적 지식을 타고
이런 질문으로 변화된 것이겠지요.

이런 질문은
지금 법우님 뿐 아니라
말씀드렸듯이 인류를 이어오며 계속되어 온 것인데요,
부처님 당시에도 이런 질문은
아주 중요한 당시의 시대적인 의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을 하느냐에 따라
몇 가지로 사상이나 종교가 나뉘기도 했지요.

그 대표적으로 부처님 이전의 인도에는
적취설과 전변설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었습니다.

전변설이란
기독교나 인도의 바라문교의 교설이 이에 해당된다 할 수 있겠는데요,
쉽게 말해 신, 하느님, 브라흐만 등의
태초에 하나의 절대자나 근원적인 어떤 하나의 힘에 의해
우주가 만들어지고 유지된다는 설입니다.

이에 반해 적취설이란
하나의 절대적인 존재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요소가 결합하여 우주를 만들었다는 이론입니다.

말씀하신 빅뱅설은
어찌 생각해 보면 앞의 전변설 쪽에 비중을 둔
기독교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이론이라고도 볼 수 있겠는데요,
실제로 불교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학자들은
그리 많이 따르는 학설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다시말해 빅뱅론 또한
태초에 어떤 한 점을 상정하는 것 자체가
적취론에 가깝다는 말이지요.

그럼 불교에서는
적취론의 편이냐, 아니면 전변설의 편이냐 한다면
불교는 이 두 가지의 어느 쪽에도 서 있지 않습니다.

불교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인연론이며, 연기론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적취설과 전변설 모두를 부정하시면서
연기론을 설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불교의 경전들을 살펴보면
우주의 근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놓은 곳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세기경]이나 [화엄경] [구사론] 등에서
단편적으로 보여지기는 하지만
그 또한 그리 구체적이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불교에서는 깨달음과 수행에 중심을 두는 종교인데,
형이상학적인 의문들이
내 괴로움을 없애주고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에
그런 질문에 부처님께서는 침묵을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느정도의 답변은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그것이 바로 연기론이라는 것입니다.

즉, 불교에서는
태초에 어떤 한 점이나 절대자가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연들이 인연따라 화합을 함으로써
잠시 꿈과 같고 환영과 같이 현상이 생겨나는 듯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막을 걷는 이의 눈에
배고프고 목마른 갈증의 인연에 의해
신기루가 보이듯이
지혜에 밝지 못한 어리석은 중생의 눈에는
이 세계가 진짜로 있는 어떤 현상인 것 처럼 보인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생겨난 현상세계도 환상이지만,
그렇게 생겨난 환상 또한
어떤 한 지점에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수많은 인연의 화합으로 부터 생겨났고,
그러므로 끊임없이 돌고 도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변화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십이연기라는 교설이 이것을 어느정도 대변하고 있는데요,
십이연기는
무명에서 시작해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
라는 12가지 지분으로 이 세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명과 노사는
시작과 끝이 아니라
둥근 원으로써 끊임없이 돌고 도는
윤회의 반복일 뿐입니다.

그렇더라도 무명이 생겨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를
궁금하게 여기실 텐데요,
불교적인 시각에서는
이런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질문 자체가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
어떤 근본이 있어
거기에서 다른 것이 만들어졌다는
수직적인 사고방식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런 질문 자체가
불교의 연기적 사고방식을 벗어나 있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닭과 달걀 중에서
무엇이 먼저이냐는 논쟁을 잘 아실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닭이 먼저다,
또 어떤 이들은 달걀이 먼저다라고 싸우면서
그럴듯한 학설을 내어 놓고 있지만
그 어떤 학설도 뚜렷하고 완전한 답을 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닭이 먼저거나, 달걀이 먼저여야 한다는
이것 아니면 저것 하고 둘로 나누어서
어느 것이 먼저냐, 어느 것이 옳으냐 하는
이런 사고방식이 우리 인간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 문제는 언제까지도 풀 수 없습니다.

닭이 먼저거나, 달걀이 먼저인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는 상호의존적이며,
상호연기적인 관계입니다.

즉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나중이랄 것도 없이
무시무종으로
이것이 있어야 저것이 있고
이것이 소멸되면 저것도 소멸되는
연기적인 관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닭과 달걀만 이런 연기적인 관계인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존재, 현상, 세계가
모두 이와 같은 연기적인 관계인 것입니다.

조금 다른 비유로,
나무와 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나왔는가를
수직적으로 따지려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꽃은 그 씨앗에서 나왔다라고 하겠지만,
어떻게 꽃과 나무가 그 씨앗에서만 나왔다고 하겠습니까.
수많은 인연, 수많은 연기적인 도움,
우주적인 온 우주법계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그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가 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씨앗도 원인이지만,
흙과 자양분과 태양과 또 빗물과
그 토양 안의 수많은 미생물들과
또 때로는 사람의 노력 등이 모두가 모이고 모여
나아가 이 우주의 일체 모든 존재들이
서로 서로 크고 작은 힘을 모아서 싹틔운 것이
바로 꽃이요 나무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 꽃은 그 나무는
어디에서 갑자기 튀어 나온 것이 아니라,
이 우주법계가 공통으로 모두 함께 생성해 낸 것이며,
이 우주 법계 그 자체가 꽃으로 나툰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발밑의 어린 야생화 한 그루가
이른 봄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온 우주가 모두 함께 오케스트라와 같은
아름다운 생명의 연주를 해 주었을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전변설이라고 하여
어떤 하나의 절대가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적취설이라고 하여
몇몇가지의 요소가 화합하여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연기적이고 인연화합된
상호의존적인 관계로써
온 우주는 이렇게 지금 이 순간도 연주되고 있는 것입니다.



No. 1
2007-01-30 
11:24:25 

윤경애 
지금 창 밖으로 하얀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나무가지위에 까치 두마리가 연실 부리로 무엇인가를
쪼아 대고 있습니다.
우리집 강아지는 춥고 귀찮은지 자기 집에서 꼼짝을 않고 있구요.

저는 생각하기를 살아 생전에 어떤 유정물이든간에
불경 한번 듣는 공덕이 무지하게 크기 때문에
다음 생에서는 좀더 나은 생으로 환생한다는
말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사는 강아지에게도
불경을 듣게 해주기를 즐겨하고,
다음 생에선 부디 사람 몸 받아
손으로 한번 밥을 먹어 볼수있기를 기원하곤 하지요.
그러기를 강아지 만 이겠습니까 마는...

연기, 윤회, 선업, 악업, 공의 덕,무기 이러한 것이
하늘에서 내리는 저 눈과 무에 그리 다른가 싶은생각에
드린 말씀이지요.

법우님들의 무기론으로 얘기되는 말씀들은
너무나도 인상 깊었습니다.

태초의 生을
지금 주어진 자신의 생에서 마음공부로
그 비밀을 풀어봄이 옳다하신 말씀도 좋았고,
불자된 도리로 다른 이들의 궁금증을 시원히
대답함으로 부처의 길을 가고자 하시는 분도
존경할만한 신심이십니다.
모다 공부하는 이의 참자세라 생각듭니다.

제 좁은 소견으론 그렇습니다.
부처님이 모르셔서 입을 다물어 버리신것도 아니요,
천기누설쯤 되는 비밀이라 말씀 않으신것도 아니요,
가르쳐 줘봐야 알아 듣지도 모를것이란 자만심에서도 아니란걸...

단지....
숙제....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스스로의 숙제이기에
몇겁을 윤회해서라도 스스로 알아야할
본인의 '지도리'이기에 단지 말씀 않으셨다는 것
그리 알고 싶습니다.

닥터 호킹이나 아인슈타인, 금세의 학자들이 아닌
나 자신이 알아야 할 "앎"이기에
알수없는 염화미소등으로 나타내 보이신
부처님이 그립습니다.

아!
부처님 시대에 나서 가까이 뵙지 못한 저의 인연이
안타깝기만 할 뿐입니다.
진정 부처님이 오늘 따라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No. 2
2007-01-31 
13:54:15 

강미정 
요즘,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과 대화하기를 원한다면
불교도 과학을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미시 원자들의 세계엔 실체가 없습니다. 전자도 광자도 '입자와 파장'의 성질을 동시에 가집니다. 그들은 '확률'로써 존재하며, 인간이 관찰할 때 비로소 거기 그렇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세계의 존재상은, 여기 광자가 있다! 식의 확신이 아니라, 여기 광자가 존재할 확률이 30%다! 식의 추정입니다. 한마디로 색즉시공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허상의 세계가 거시적으로 볼 땐, 지금 우리 눈에 비치는 바로 이 단단한 세계상입니다. 놀랍고 경이롭습니다. 어째서 일까요? 도대체 이게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과학은 답을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궁극의 이론'을 향해 느린 진보의 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 과학의 현실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오래전에 깨달은 불교가 과학을 리드해야합니다. 불교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답이 '언어' 너머에 있다는 것 뿐입니다.

그렇더라도 진정한 깨달음은 '방편'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불교'가 실력이 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불교인)의 수준이 어리석어 불교를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현대수행자들의 큰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극히 인문학적인 사람으로, 학창시절엔 수학 과학과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진리'에 가닿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에서 종교와 과학이 같은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불교공부 못지않게 열심히 과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좋은 책 있으면 추천 많이 해주세요.. 불교와 과학을 어우르는 책들의 수준이 형편없고, 종류 역시 많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언급한 <현대물리학으로 풀어본 반야심경> 정도가 제가 최근에 찾아낸 괜찮은 도서입니다. 좋은 정보 공유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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