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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불교의 이해와 활용 7
- qwe****
- 질문 365건 질문마감률98.9%
- 2009.06.06 19:08
- 답변
- 1
- 조회
- 141
이제는 근본불교에 대한 이런 글을 여기에서 마감해야 할 때이라고 보이네요.
근본불교의 가르침의 핵심에서 본다면 바로 대승도 선종도 그 핵심에서 곧바로 볼 수 있는 거라고 이야기한 거이기도 함니다만,
그래서 비록 근본 불교를 연구한 학자로서 아상가 교수처럼 세계적으로 훌륭하신 님조차도 학자적 자세로서만 접근하는 거로는 알 수가 없는 거에 대하여 이야기하여 둔 거임니다.
세존의 가르침의 핵심에 스스로 서는 님이라면
이리 저리 곧바로 진입하는 거라고,
나아가서 선사들의 공안도 이러한 세존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아니함니다.
달리말하면 가르침의 핵심에 서서 접근하면 누구라도 곧바로 깨닫게 되어져 있는 거임니다. 현재의 망념에 서서 접근하면 세월이 기약이 없는 거이지요.
소대승이니 교선이니 돈점이니 간화니 묵조니 하는 거는 사람이 스스로 선 지견의 차이에 따르는 거이지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설령 틀리게 쓰여져 있는 경전이라 하드래도 스스로 여래지견에 선다면 오히려 팔팔하게 살아있는 거임니다.
아함경에도 세존의 직설이 아닌 거가 들어가 있거나 세존의 직설중에서 이해되지 아니한 거로서 부득이 누락되어진 거들도 있는 거임니다.
비록 누더기같은 스승의 가르침이드래도 팔팔하게 살아나는 거는 님 스스로에게 달려있다는 거이네요.
나무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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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근본불교의 이해와 활용 7
- snimjoa
- 답변채택률41.9%
- 2009.06.07 15:24
질문자 인사
빠른 답변 완전 감사해요!
qwes51님 그동안 올려주신 것들 잘 읽어보았습니다.
저는 대승과 선불교를 삿되다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치우친 것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특히 대승경전은 장점과 단점, 치명적인 맹독 3가지로 봐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_()_
부처님은 자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수많은 당시의 바라문들과 일체중생들에게
무아에 대한 설법을 하셨지요.
부처님은 희생제 제사 진언 다라니 브라흐마의 계합 신에게 헌신이라는 바르지 않은 사상들이 있을때, 불사의 법륜을 굴리시어 사성제 팔정도를 설하셨지요.
이런 부처님에게 바라문들은 예의를 모르는자, 교양없는 자, 버릇없는 자, 까까머리, 거지 등등 수없이 많은 거친 말들을 쏟아내엇습니다.
우리들이 부처님의 원음인 아함경과 니까야를 읽어보면, 불교경전을 결집했던 마하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비롯한 아라한들이 이러한 것까지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전해주고 있음을 알면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진실은 두렵고 공포스럽고, 지금딛고 있는 견해를 허물어지게 하고, 믿음을 허물어지게 하고, 세력을 잃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중생을 부처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연민하셨기 때문에 무아와 사성제 팔정도라는 위대한 법륜을 굴리신 것이지요.
이시대에 우리불제자들이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지금딛고 있는 견해가 허물어질수도 있고 믿음이 허물어질수도 있는 것이 바로 비불설창작대승경전과 창작불보살과 부처님원음을 바로 아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을 꿰뚫어아는 것이 참다운 부처님원음을 알게하는 것이기도 하며, 자비와 연민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유모가 있다. 애가 돌맹이를 입에 삼켰다.
유모는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어 돌맹이를 끄집어낸다.
아이는 아파서 울지만 유모는 자비심으로 그러한 것이다.
아이는 돌맹이를 먹지 않게되고 바르게 살게되는 것이다.
여래도 이와같이 할때가 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부처님의 원음이 어떤 중생들에겐 두려움과 공포 불안을 가져오기도 한다는 말씀이지요.
부처님이 그러한 것을 아시면서도 법을 설함은 바로 바른 법이야 말로 중생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시대불제자들도 부처님원음을 소승으로 알고, 부처님직제자들을 소승이고 멍청한 자로 알고, 비불설창작대승경전을 불설로 완전히 믿으며, 헛개비창작불보살에게 기도하고 가피를 바라고 친견을 바라는 신행을 합니다.
이러한 것은 돌맹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돌맹이를 삼키면 어쩔수 없이 오랜세월 부처님법을 잘몰라 헛개비창작불보살을 높이고 석가모니부처님은 잘모르고, 비불설창작대승경전은 높이고 부처님원음은 무시하는 길로 들어서 결국은 부처님원음과 부처님직제자들을 맞서게 되는 길로 들어서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저또한 그렇구요. 이것을 벗어나는데는 오랜세월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우리시대 불제자들은 길을 잘못들어 오랜세원 헤메면서 돌아올것이 아니라
대승경전은 비불설창작대승경전이라고 바르게 꿰뚫어알고
대승의 불보살은 헛개비 창작불보살이라고 바르게 꿰뚫어 알고
이러한 비불설창작대승경전과 헛개비창작불보살을 만든 것은 바로 대승논사들의 중생심과 어리석음이었음을 꿰뚤어알고,
부처님의 원음은 아함경과 니까야이며
부처님이 성불하신 수행법은 위빠사나이라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야 말로
이 시대 불자들이 불교를 배우는 첫단추가 되고 첫계단이 되고
초발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_()_
누구든지 지. 관(止觀), 정. 혜(定慧)를 함께 닦아서 중도를 정등각하여 진여법계로 들어가면 그만이지 거기에서 보면 무슨 이승이니 삼승이니 하는 헛된 길(空路)은 없습니다. 원시경전에 부처님 제자들이 깨친 경로가 삼아승지겁이 걸린다고 하는 등의 수증(修證)의 점차(漸次)는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비구 교진여가 부처님의 중도법문을 듣고 바로 깨치고 나서'집(集)이 곧 멸(滅)'이라고, 즉 생사가 곧 열반이라고 하니 부처님께서 인가하셨다는 말은 내가 앞에서도 여러 번 귀따가울 정도로 말했습니다. 말로서만 '생사 즉 열반'이 아니라 확실히 원융무애한 것을 체득한 것입니다. 그 뒤에도 부처님의 제자가 깨친 사실이 자주 나오는데 그것을 보면 모두가 바로 깨쳐 들어갔지, '삼아승지겁을 닦아 성불한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둘러가는 공로(空路)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 성철스님의 [백일법문] 중에서
우리 한국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중국에서 불법(佛法)이 전해져왔기 때문에 앞에서 말씀드린 천태지의선사의 5시8교 교상판석에 의한 그 불법을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하다보니까 거기 천태지의대사의 교상판석에서 얘기하듯이 ‘아함경을 소승이다’라고 했기 때문에 따라서 내용도 잘 모르면서 ‘아함이다. 아함은 소승교다’ [그렇게 알았어요]....
- 수덕사 강주 응각스님의 아함경법문중에서 -
대승불교운동을 전개햇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주장하는 불교적 견해를 경이란 이름으로 유통시켰는데 그들은 붓다의 권위를 빌려 자기들의 주장을 유통시키면서 붓다를 신격화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앗다. 대승불교도들은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붓다를 그려냈다. 한마디로 대승경전은 문학적 픽션이다.
[유마경]에서는 ‘세존의 몸에 병이 났는데 우유가 필요해서 왔다’고 말하는 아난다에게 ‘여래의 몸은 금강신인데, 어떻게 병이 나고 어찌 괴로움이 있다는 말이냐’고 유마거사가 질타했고,
[대반열반경]에서는 재가신도인 쭌다가 문수사리에게 ‘만약 여래도 늙음과 죽음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놈은 지옥에 들어가기를 마치 자기 집에 가듯이 할 것’이라고 까지 말한다.
[법화경]에서는 석가모니부처님이 숫도다나의 아들로 태어난 금생에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이미 헤아릴 수 없이 오랜 과거에 깨달으신 분이므로 부처님은 영원한 존재라고 말한다.
대승불교로 갈수록 붓다는 더욱 더 신이 되어갔다. 대승불교도들은 자신들이 그려낸 붓다를 추켜세우느라 역사적 존재엿던 고따마 붓다를 뒤로 숨겨버렸다. 신앙이란 이름으로 실상(實像)을 허상(虛像)에 묻어버린 것이다.
- 강남포교원장 성열스님의 저작인 [고따마 붓다]중에서 -
불교가 불교이려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해서 설명되고 이해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당연한 일이다. 이를 문자주의라고 한다면 불설을 부정해야 하는 모순에 빠진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기초해야한다는 생각을 법집(法執)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두 번째 대승경전 문제는 아무리 변명해도 논리가 궁색하다는 느낌이다. 대승의 경전이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사상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또 그것은 매우 가치 있는 것임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대승경전이 대승적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내가 체험한 깨달음은 이렇다’고 썼어야 옳다. 역사적 부처님을 내세워 불설을 가탁하는 것은 정직하지도 않고, 신앙상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후대에 누가 또 경전을 만든다 해도 위경(僞經)이라고 말할 근거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인도에서 만든 것은 진경(眞經)이고 중국에서 만든 것은 위경이라고 하는 것은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더구나 만들어진 것이 밝혀졌는데도 불설로 믿어야 한다는 것은 지성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 불교신문 홍사성 주간 -
초기불교는 근본경전에 나타난 불교를 의미하며, 대 소승을 포함한 모든 불교의 뿌리이다. 후대의 불교는 모두 초기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흔히들 <아함경>과 같은 근본경전은 근기가 낮은 중생들을 위해 설한 소승경전이기 때문에 세존의 깨달음을 완전히 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세존이 직접 설한 가르침은 근본경전이며, 세존께서 아껴두거나 감추어 둔 가르침은 없다. 다만 중생들의 근기가 낮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 이중표교수가 불교학연구회에 올린 글에서 -
5. 그럼 지금이라도 아함경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아함경을 인정하면 대승불교 즉 한국불교의 존립기반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함경을 받아들이면 그 동안 승려들이 법문한 거의 모든 것이 거짓으로 판정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아함경을 마치 원시불교 즉 스리랑카 태국 베트남 등 소승에서 배우는 경전으로 치부하고, 자신들이 배우는 금강경 등의 대승경전이 최고인냥 권위를 부여하여, 신도들에게 기도하면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데도 읽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예로 조계종단에서 선승으로 추앙받는 큰스님이 아함경의 중요함을 인식하고 이제부터라도 승려들이 아함경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자, 승려들이 그 스님이 주석하시는 선방에 들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원불사의 소의경전은 아함경입니다.
또한 한국 나아가 세계의 모든 불교의 소의경전은 아함경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불제자가 오늘부터라도 경건한 마음으로 아함경을 읽으시기를 삼가 바라마지 않습니다.
- 대승에서 아함경을 무시하는 이유 - 도월스님
_()_
[파사현정] 용수, 부처님원음을 강철군화로 밟다
대지도론은 용수의 저작으로 나에게는 창작불보살이라는 전도몽상을 깨닫게 해준 위대한 논서이다. 한편 용수의 대지도론은 대승불교에 있어 중요한 이념서적역할을 충실하게 해왔는데, 세월이 흘러 부처님원음이 드러나게 되자 용수가 대지도론에서 저지른 흑마술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부처님 당시에 대소승이 없었고, 아함경이 부처님원음이며, 대승의 불보살이 방편 혹은 창작불보살임을 꿰뚫어아는 이 시대의 불제자들이 용수의 대지도론을 읽어나가면 용수라는 대승불교의 위대한 변호사가 어떻게 거짓을 진실로 만들고, 진실을 거짓으로 만들면서 현란하고 기기묘묘한 술책으로 부처님원음을 땅속에 파묻었는지를 알수 있게 해준다. 아래에 인용하는 구절들은 대지도론의 마지막 [촉루품을 풀이함]에 나오는 용수의 어지러울정도로 현란한 변론솜씨를 보여준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부처님원음이 드러난 이 시대에 용수의 대지도론에 나오는 이러한 현란한 변론문은 가련하기 짝이 없으니, 용수가 부린 재주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용수가 부린 흑마술의 실체를 여지없이 햇볕에 드러나게 해주고, 용수가 부처님원음에 삽으로 퍼다나른 눈과 얼음무더기가 부처님원음이라는 강렬하고 따뜻하고 눈부신 햇살에 질척질척 뻘창으로 녹아내리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九○, 「촉루품(囑累品)」을 풀이함
5.
대승의 여러 큰 경전은 한량없고 끝이 없어서 마치 큰 바다 속의 보물과 같거늘 어떻게 三장 가운데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작은 물건은 큰 물건 속에 들어가지만 큰 물건은 작은물건 속에 들어갈 수가 없다. 만일 묻고 싶거든 ?어찌하여 마하연 가운데에 있지 않은가?고 물어야 된다. 마하연은 소승(小乘)의 법을 겸할 수 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그대는 그렇게 묻지 말아야 한다.
- 용수의 대지도론에서 -
.....
용수는 참으로 무서운자이고
뻔뻔한 자이고 참람된 자이다.
용수가 사이코패스적인 이론가임이
이런 곳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중론에서는 석가모니부처님을 드높인 척 하면서,
이런 곳에서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원음인
아함경과 니까야를 작은 물건이라 깔아뭉개고,
창작불보살경전 대승경전을 큰 바다 보물이라 칭하니
참으로 낯이 철판아니라면 쓸수없는 구절이라 할것이다.
부처님원음을 마하가섭이 결집한 삼장이
어찌 작은 물건이라고 입을 놀린단 말인가?
이게 진짜 불제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인가?
지금 불제자들이야 이런 용수의 말에 속아서
그렇게 말한다고 할수 있지만
용수는 직접 창작불보살경전을 쓰고 해설하고
창작불보살을 뽑아내고
창작불국토를 건설한자가 아닌가
그렇다면 실제로 삼장이야말로 부처님원음이
전승된 것임을 바로 알것인데
이렇게 감히 붓끝을 놀려
부처님원음을 작은 물건이라고 짓밟아대니
천추에 남을 만고의 사기꾼이 아니고 뭔가
용수가 삼장을 작은 물건이라고 칭하는 것은
소승이고 성문법이고 하열한 법이라고
칭하는 것과 전적으로 같은 의미이니
후대의 스님들과 불제자들이
이런 거짓말쟁이의 거짓말에 속아
부처님원음인 아함경을 소승이라하고
철저하게 무시하지 않았던가?
용수가 놀던 당시에는
이런 거짓말이 통용될수 있었지만,
다행히 지금은 불교의 역사가 드러나서
부처님원음의 햇살이 투명한 대명천지라,
위대한 변호사인 용수가 기를 쓰고 변론하는
이런 허접쓰레기 같은 말들이
부처님원음이라는 뜨거운 불에
녹아내리는 얼음물같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끝없이 석가모니부처님을 찬탄하는듯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렇게 석가모니부처님이
45년간 고구정녕히 설하신 부처님의 원음을
깔보고 무시하고 작다 저열하다 비방을 하니
얼굴이 두 개인 아수라백작이요,
낮과 밤이 다른 프랑켄슈타인이요,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지만
칼로 난도질도 할수 있는
싸이코패스의 마음속과 다를게 무엇이란 말인가?
_()_
1. 용수는 부처님원음으로 마하가섭이 결집한 3장을 작은 물건이라고 칭하였는데, 용수의 이런 더러운 말이 후대의 스님들과 불제자들에게 강력한 환각제주사가 되었다고 볼수 있을것인데요. 실제로 우리가 아는 많은 교상판석에서 아함경은 항상 외도 다음, 불법중에서는 가장 낮은 것으로 나오고, 또 많은 대승경전에서 소승성문법(부처님원음인 아함경)은 외도와 거의 같이 묶어 버려야할 방편법으로 규정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용수가 부처님반열반후 마하가섭존자가 결집한 3장을 작은 물건이라고 규정한 이런 더러운 말이 가당합니까?
2. 용수와 달리 성철스님은 3장중에서 경장인 아함경과 율장을 부처님원음 부처님직설로 규정하시고, 아함경에서 아공만 설하고 법공은 설하지 않은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교판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셨는데요(백일법문). 성철스님의 말씀이 옳습니까? 용수의 저 참람한 더러운 말이 옳습니까?
3. 용수는 “만일 묻고 싶거든 ?어찌하여 마하연 가운데에 있지 않은가?고 물어야 된다. 마하연은 소승(小乘)의 법을 겸할 수 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그대는 그렇게 묻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였는데요. 이런 용수의 사악한 주장에 의해서 우리시대 불제자들도 아함경의 핵심은 대승경전에 모두 다 담겨져 잇으니 아함경을 읽지 않아도 된다. 아함경을 대승경전은 “발전”시켰다는 주장을 하고, 아함경에는 깊은 뜻이 드러나지 않고 대승경전에는 깊은 뜻이 드러난다라는 식의 말을 하게되는데요. 부처님의 원음을 창작불보살들이 반딧불처럼 명멸하는 대승경전이 과연 석가모니부처님의 위없는 원음인 아함경을 담을수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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