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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원문
님, 보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께서 이러한 하나의 원리를 올바로 선언했습니다. 수행승이 그 가운데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면, 아직 해탈되지 못한 마음이 해탈되고, 아직 부서지지 않는 번뇌가 부서지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멍에로부터 안온이 성취됩니다.”(A11.16)
이 법문은 아난다존자가 베살리 앗타카 시의 장자에게 한 말입니다. 장자가 아난다에게 ‘부처님이 설하신 가르침이 어떠한 것인데 위 없는 멍에로부터 안온을 성취할 수 있읍니까?’라고 물어 본 것에 대한 답변입니다. 여기서 ‘멍에로부터 안온’은 빠알리어로 ‘요가케마(yogakkhema)’라 합니다. 영어로는 ‘release from the attachments’라 하여 집착된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하는데 하여 열반과 동의어로 사용됩니다.
아난다는 장자에게 네 가지 선정을 설명합니다. 초선에서부터 4선정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이 선정도 만들어진 것이고 의도된 것이다. 그런데 어떠한 것이든 만들어지고 의도된 것은 무상하고 소멸하고야 마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알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정이 만들어진 것이라 합니다. 이 경에서만 볼 수 있는 놀라운 말입니다. 선정에 들어 가고자 하는 의도가 있어서 선정삼매에 따른 희열, 행복, 평온을 맛 본 것이라 합니다.
열한 개의 불사(不死)의 문
선정에 들기 위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는 것’이 첫 번째 조건입니다. 다음으로 사유와 숙고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조건은 의도된 것이고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후 전개 되는 선정 역시 만들어지고 의도 된 것입니다. 사무량심에 따른 선정도 마찬가지이고 무색계 선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에 따르면 모두 11개의 선정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색계 네 가지 선정, 네 가지 무량한 마음(사무량심), 세 가지 무색계 선정입니다. 다만 무색계 선정에서 비상비비상처정은 빠져 있습니다. 이와 같은 11가지 선정은 만들어진 것이고 의도된 것이라 했습니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것이고 의도 된 것은 무상하고 소멸되고 마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경에 따르면 11가지 선정이 의도된 것임을 알았을 때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경에서는 11개의 ‘불사의 문’으로 묘사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장자는 가르침을 듣고 “존자여,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집에 열한 개의 문이 있는 집에 사는데, 그 집에 불이 붙었을 때 열한 개의 문 하나하나를 통해서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듯이, 존자여, 이와 같이 저는 열한 개의 불사의 문 가운데 하나하나의 불사의 문을 통해서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A11.16)라며 환희 합니다.
어떻게 힐링할 것인가?
흔히 하는 말 중에 “지금 이순간을 즐겨라”라 합니다. 또 “행복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즐김과 행복은 사실상 동의어입니다. 즐거움과 행복이라는 말은 늘 함께 합니다. 고통의 반대말이 즐거움이고, 즐거운 것은 행복이라고 공식처럼 성립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모두 행복을 추구합니다.
살다 보면 반드시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다보면 행복과 불행은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이익과 불이익,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행복과 불행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곳이 세상 사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오로지 행복, 오로지 명예, 오로지 칭찬, 오로지 이익만 추구했을 때 괴로움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갈애와 집착에 따른 것입니다.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갈애와 집착 때문입니다. 자아에 대한 집착된 자가 아무리 행복을 추구해도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오욕락을 즐기고 선정삼매를 즐겨 보지만 그때뿐입니다. 갈애와 집착을 가지고 있는 한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 행복이라는 말 대신 이제 ‘힐링’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힐링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세상의 흐름과 반대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탐, 진, 치로 살아 갈 때 불탐, 부진, 불치로 살아 가는 것입니다. 방법은 현상에 대하여 무상, 고, 무아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선정마저 만들어진 것이고 의도된 것이라 했습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금 즐거움이나 행복에 대해서도 “무상하고 소멸하고야 마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알려 주는 것, 이시대 힐링멘토가 해야 할 말 아닐까요?
2017-11-08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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