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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에도 사띠와 삼빠자나
열대의 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년 칠월말에서 팔월 중순까지 약 이십여일 괴로운 밤을 보내야 합니다. 이럴 때는 산속을 생각하게 됩니다. 산중에서 밤은 도심에서 밤보다 온도가 약 4도 가량 낮다고 합니다. 도심에서 열대야가 있어도 산중에서는 열대야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잠 못 이루는 밤
열대야는 한때 뿐입니다. 삼주 정도 참으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 쾌적한 잠자리가됩니다. 그러나 도시에서 잠을 못 이루는 요인은 많습니다. 앙굿따라니까야 ‘잠을 못 이루는 자의 경(Appaṃsupatisutta)’을 보면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Pañcime bhikkhave appaṃ rattiyā supanti, bahuṃ jagganti. Katame pañca:
Itthi bhikkhave purisādhippāyā appaṃ rattiyā supati, bahuṃ jaggati. Puriso bhikkhave itthidhippāyo appaṃ rattiyā supati, bahuṃ jaggati. Coro bhikkhave ādānādhippāyo appaṃ rattiyā supati, bahuṃ jaggati. Rājā bhikkhave rājakaraṇiyesu yutto appaṃ rattiyā supati, bahuṃ jaggati. Bhikkhu bhikkhave visaṃyogādhippāyo appaṃ rattayā supati, bahuṃ jaggati.
Imehi kho bhikkhave pañca appaṃ rattiyā supanti, bahuṃ jaggantīti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사람은 밤에 잠을 잘 못 이루고 자주 깨어 있다.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여인은 남자를 희구하여 밤에 잠을 잘 못 이루고 자주 깨어 있다.
수행승들이여, 남자는 여인을 희구하여 밤에 잠을 잘 못 이루고 자주 깨어 있다.
수행승들이여, 도둑은 절도를 희구하여 밤에 잠을 잘 못 이루고 자주 깨어 있다.
수행승들이여, 왕은 정무에 묶여 밤에 잠을 잘 못 이루고 자주 깨어 있다.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은 속박의 여읨을 희구하여 밤에 잠을 잘 못 이루고 자주 깨어 있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사람은 밤에 잠을 잘 못 이루고 자주 깨어 있다.”(A5.137)
잠 못 이루는 것에 대하여 남자, 여인, 절도, 정무, 여읨 이렇게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반은 남자이고, 이 세상의 반은 여자입니다. 욕계세상에서 여인(Itthi)은 남자(purisa)를 바라고, 남자는 여인을 바라는 것은 자연스런 일일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원했을 때 잠 못 이루는 밤이 되기 쉬울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도둑이 밤에 잠 못 이루는 것은 도둑질 때문이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도둑질을 잘 할 수 있을까라며 연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왕은 정무 때문에 늦게 까지 잠 못 이룬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밤 늦게 일하는 사람도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여인, 남자, 도둑, 왕은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상을 열렬히 바란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열렬히 바라고, 남자는 여자를 열렬히 바라고, 도둑은 훔칠 것을 열렬히 바라고, 왕은 정무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거꾸로 갑니다. 수행자는 대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여의는 것입니다. 이를 ‘속박의 여읨(visaṃyogādhippāya)’라 했습니다.
속박의 여읨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 ‘지금 열반을 얻으리라. 지금 열반을 얻으리라.’라고 열반에 전념한 것을 뜻한다.”라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욕망으로 살아 갈 때 수행자들은 욕망을 내려 놓는 삶에 전념함을 말합니다.
들 떠 있을 때
잠을 잘 못 자는 경우는 대상에 대한 욕망이나 분노가 가득할 때입니다. 또 하나 잠 못 이루는 케이스는 들 떠 있을 때 입니다. 너무 행복해도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아나타삔디까가 대표적 케이스입니다. 상윳따니까야 ‘쑤닷따의 경’에 따르면 아나타삔디까는 부처님을 만나러 갈 생각에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경에서는 이렇게 표현 되어 있습니다.
“나는 내일 알맞은 때에 세존을 뵈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존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으나 밤중에 새벽인줄 알고 세 번이나 잠이 깼다.” (S10.8)
아나타삔디까는 잠을 자다 초야, 중야, 후야 세 번 깼습니다. 부처님이 출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내일 부처님을 만나러 가야겠다는 기쁨에 잠을 못 이룬 것입니다. 주석에 따르면 초야에 잠을 깬 것에 대하여 “그는 밤의 초야에 부처님을 생각하며 일어났는데, 믿음과 기쁨에 넘쳐 광명이 나타나고 어둠이 사라졌다. 그는 벌써 날이 밝았다고 생각하여 성문을 나섰는데, 밖에 나가서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Srp.I.313)라 했습니다. 부처님을 염하는 마음(佛隨念)으로 광명상(光明相)이 나타난 것입니다.
아나타삔디까는 불수념에 따른 광명상으로 날이 밝은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주석에 따르면 “마치 천 개의 등불을 켠 것 같았고 태양이 떠 오른 것 같았다.”라 했습니다. 이러기를 무려 세 번이나 반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너무 기쁨에 들떠도 잠을 잘 이룰 수 없음을 말합니다.
잠을 잘 자는 방법이 있는데
잠을 잘 자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음에 오염원이 없을 때 잠을 잘 이룰 수 있습니다. 이는 앙굿따라니까야 ‘알라바까의 경’에서 “나는 세상에서 잠을 잘 자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A3.35)라 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잠을 잘 수 있는 조건으로서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여읨을 들고 있습니다. 탐욕에 대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왕자여, 그 장자나 장자의 아들을 탐욕으로 인한 고뇌로 불태우면서 괴롭게 잠을 자게 만드는, 그 탐욕이 여래에게는 버려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왕자여, 나는 잘 잤습니다.”(A3.35)
왕자나 장자 등 모든 것을 갖춘 자들이 잠 못 이루는 것은 ‘번뇌’ 때문이라 했습니다. 이를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인 탐욕으로 인한 고뇌”라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신체적이라 하는 것은 다섯 가지 감각의 문을 동요시키는 것이고, 정신적이라고 하는 것은 정신의 문을 동요시키는 것이다.”(Mrp.II.22)라 했습니다.
번뇌가 많으면 잠을 못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으로 불타 오를 때 그 열기로 인하여 잠 못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여의었으므로 잠 못 이루게 하는 열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숲속 노지 북풍한설에서도 “나는 세상에서 잠을 잘 자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라 했습니다.
사띠를 놓치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
잠은 자고 싶다고 자는 것이 아니라 잠이 와야 잠을 자는 것입니다. 잠이 오지 않음에도 억지로 잠을 잘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억지로 잠을 청하려 한다면 비몽사몽간에 잠의 질이 나쁜 잠만 잘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치 않습니다. 이는 사띠를 놓친 경우에 해당됩니다. 사띠를 놓쳤을 때 잠을 못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앙굿따라니까야 ‘새김을 잃음의 경’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Pañcime bhikkhave ādīnavā muṭṭhassatissa asampajānassa niddaṃ okkamato. Katame pañca:
Dukkhaṃ supati, dukkhaṃ paṭibujjhati, pāpakaṃ supinaṃ passati, devatā na rakkhanti, asuci muccati.
Ime kho bhikkhave pañca ādīnavā muṭṭhassatissa asampajānassa niddaṃ okkamato.
“수행승들이여, 새김을 잃고 올바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잠이 들면,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재난이 있다.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괴롭게 잠자고, 괴롭게 깨어나고, 악한 꿈을 꾸고, 신들이 수호하지 않고, 부정한 것을 누설하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새김을 잃고 올바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잠이 들면,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재난이 있다.”(A5.210)
잠이 오지 않음에도 잠을 자기 위해 억지로 잠을 청했을 때 사띠를 놓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띠를 놓치고 잠이 들었을 때 다섯 가지 재난은 “괴롭게 잠자고, 괴롭게 깨어나고, 악한 꿈을 꾸고, 신들이 수호하지 않고, 부정한 것을 누설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부정한 것을 누설하는 것은 몽정(夢精)을 뜻합니다.
의도적 정액방출에 대하여
몽정과 관련하여 율장비구계에 따르면 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의도적 정액방출은 승단잔류죄가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율장비구계 승단잔류죄법 제1조에 따르면 “의도적으로 정액을 사정하는 자는 승단추방죄를 범하는 것이다.”(Vin.III.112)라 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인연담이 ‘정액방출에 대한 학습계율’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몽정은 승단추방죄가 아닙니다. 이에 대하여 율장비구계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수행승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김을 잃고 올바로 알아차림이 없이 잠에 들었다. 그들은 새김을 잃고 올바로 알아차림이 없이 잠을 자다가 정액을 사정했다. 그들은 후회했다.
[수행승들]
“세존께서는 ‘의도적으로 정액을 사정한 것은 승단잔류죄를 범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우리는 잠을 자다가 정액을 사정했다. 그때에 우리에게는 의도가 있었다. 우리는 승단잔류죄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세존께 그 사실을 알렸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의도가 있더라도, 그것은 예외적인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학습계율을 송출해야 한다..”
[세존]
“의도적으로 정액을 사정하는 것은, 몽정을 제외하고, 승단잔류죄를 범하는 것이다.”
(율장비구계, 제2장 승단잔류죄법, Vin.III.112, 전재성님역)
율장비구계에 따르면 몽정도 의도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꿈속에서 사정한 것도 의도가 있어서 사정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잠을 자면서 사정한 것과 의도를 가지고 사정한 것에 대하여 엄격하게 구분해 놓았습니다.
율장비구계에 따르면 의도적 사정에 대해서는 비난 받았습니다. 이는 율장비구계에서 “그대는 그 손으로 신자의 시물을 먹고, 그 손으로 수음하여 정액을 사정한 것인가?”(Vin.III.112) 라고 어느 수행승이 비난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수행승이 몽정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사띠를 놓친 것입니다. 음식절제를 해야 하나 맛있는 음식을 탐욕으로 먹은 것입니다. 더구나 사띠하지 않고 잠에 들었습니다. 음식을 먹는 과정에서부터 잠자기에 이르기까지 사띠를 놓쳤을 때 괴로운 잠자리가 된 것입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술을 마시고 자면 집중하기 힘듭니다. 술이 취한 상태에서 잠을 잤다면 괴롭게 잠자고, 괴롭게 깨어나고 악한 꿈을 꾸기 쉽습니다. 이는 사띠(sati)와 삼빠자나(sampajāna)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잠을 잘 자는 사람중에 한사람이라 했습니다. 이는 앙굿따라니까야 ‘날라까빠나의 경’에서 “세존께서는 가사를 네 겹으로 해서 펴고 오른쪽 옆구리로 사자 형상을 취하고 한 발을 다른 발에 포개고 새김을 확립하고 옯바로 알아차리며 자리에서 일어날 것을 생각하며 누우셨다.”(A10.67)라고 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잠을 잘 때도 사띠하고 알아차리면서 자고, 잠에서 깰 때에도 사띠하고 알아차리면서 깼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잠자기 전에도 사띠하고 잠을 깨어 나서서도 사띠를 유지한 것입니다. 더구나 잠을 큰대자로 등을 대고 누워서 잔 것이 아니라 옆구를 대고 잔 것입니다. 이는 잠을 많이 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잠을 조금만 자도 사띠와 알아차림을 유지했을 때 깊은 잠을 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억지로 잠을 청하면 잠은 더 멀리 달아나 버립니다. 그럴 경우“잠이 오면 잠을 자면 되지”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할 것입니다. 잠들기 전까지 사띠하고 삼빠자나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잠에 대한 공덕이 있다고 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잠이 들면, 이와 같은 다섯 가지 공덕이 있다.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즐겁게 잠자고, 즐겁게 깨어나고, 악한 꿈을 꾸지 않고, 신들이 수호하고, 부정한 것을 누설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잠이 들면, 이와 같은 다섯 가지 공덕이 있다.”(A5.210)
2017-07-20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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