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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머리를 쓰다듬으셨다”쭐라 빤따까에게 자상한 부처님
어떠한 땔감에도
초기경전을 보면 ‘양가집 자제’라는 말이 종종 나옵니다. 이 말은 빠알리어 ‘꿀라뿟따(kulaputta)’를 번역한 것입니다. 영어로는 ‘young man of a good family’입니다. 빠알리어 꿀라는 ‘a family; clan; caste’의 뜻입니다. 빠알리 사전에 따르면 꿀라는 ‘a high social grade’로서 지체가 높은 것을 말하고, 또 “good family”라 하여 훌륭한 가문을 말합니다. 꿀라는 지체 높은 훌륭한 가문을 뜻합니다. 한자어로는 양가(良家)라 합니다.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시고 난 다음 지체높은 가문의 자제들이 앞다투어 교단에 들어 왔습니다. 율장대품에서 야사와 야사의 친구들을 묘사 할 때 양가집 자제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단이 커지자 신분의 차별 없이 누구나 빅쿠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노예도 있었습니다.
상윳따니까야 ‘쑨다리까의 경’에 따르면 바라문이 탁발나온 부처님을 모욕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라문은 “이 자는 빡빡 깍은 까까중이네. 이 자는 빡빡 깍은 까까중이네.”(S7.9) 라고 한 장면이 그것입니다. 이 말을 한 것은 부처님의 교단에 노예출신도 있어서 부처님을 노예출신으로 오해 하여 한말일 것으로 봅니다. 이에 부처님은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어야 하리. 어떠한 땔감에도 불이 생겨나듯 비천한 가문에도 지혜로운 현자가 생기네. 부끄러움으로 자제하는 자가 고귀하네.”(S7.9)라고 게송을 읊습니다.
부처님의 교단에는 사성계급을 초월하여 바라문, 왕족, 평민, 노예 등 모든 계급을 차별 없이 받아 들였습니다. 왕족이라 하여 대우하고 노예라 하여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율장소품에 따르면 석가족 출신의 왕 ‘밧디야’가 출가 하였을 때 이발사이었던 하인 ‘우빨리’도 함께 출가하였습니다. 그러나 밧디야는 하인을 먼저 승단에 들어 가게 하였습니다. 자신은 약간의 간격을 두어 나중에 들어 갔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태생의 자만을 제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왕출신 밧디야는 먼저 출가한 하인출신 빅쿠에게 공경의 예를 갖추었습니다. 이는 “내가 왕인데..”라는 자만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불가촉천민(caṇḍāla)
모든 땔감에서 붙는 불은 모양이나 형태에 있어서 똑같습니다. 고급전단향나무에서 붙는 불이나 소똥을 말린 것에서 붙는 불이나 불의 특징인 화염, 광명, 광채에 있어서 동일합니다. 부처님의 교단에 들어온 사성계급 역시 깨달음에 있어서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태생의 자만을 가진 바라문을 향해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습니다.
Khattiyo brāhmaṇo vesso suddo caṇḍālapukkuso,
Āraddhaviriyo pahitatto niccaṃ daḷhaparakkamo,
Pappoti paramaṃ suddhiṃ evaṃ jānāhi brāhmaṇāti.
“귀족과 사제와 평민의 계급이나
노예와 천민의 계급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고 마음을 모으며
항상 견고하게 정진하면
위없는 청정을 성취하네.
오 바라문이여, 그대는 알아야 하리.”(S7.7)
게송에서는 사성계급 뿐만 아니라 불가촉천민도 등장합니다. 순서대로 보면 왕족(khattiya), 바라문(brāhmaṇa), 평민(vessa), 노예(sudda), 천민(caṇḍāla)입니다. 여기서 천민을 뜻하는 짠달라에 대하여 ‘an outcaste or untouchable’라 하여 사성계급에도 들어 가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의 교단에는 왕족에서부터 바라문, 평민, 노예, 불가촉천민에 이르기까지 전계급이 총망라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카스트 최상층부에 있는 바라문이 부처님을 보고서 “까까중아, 거기 섯거라. 가짜 수행자여, 거기 섰거라. 천한 놈아, 거기 섰거라. (tatreva muṇḍaka tatreva samaṇaka tatreva vasalaka)”(Sn1.7)라고 소리친 것도 부처님 교단에 천민출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라문은 머리깍은 자만 보면 불가촉천민을 연상하며 말한 것도 그 때 당시에 무리가 아니었을 것으로 봅니다.
난쟁이 밧디야
부처님의 교단에는 양가집 자제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노예는 물론 불가촉천민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윳따니까야에 따르면 난쟁이도 있었습니다. ‘난쟁이 밧디야의 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경에 따르면 일부수행승들은 난쟁이 밧디야를 경멸했었습니다. 이는 부처님이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저 못생기고 추악하고 왜소해서 수행승들이 경멸하는 수행승이 오는 것을 보는가?”(S21.6)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경에 따르면 난쟁이도 부처님 교단에서 수행승으로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난쟁이 밧디야는 신통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수행승이 쉽게 도달 할 수 없는 신통을 지닌 밧디야는 아라한이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양가의 자제들이 당연히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했듯이, 그 위없는 청정한 삶을 바로 현세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 (S21.6)라 했습니다.
양가집 자제들이 앞다투어 출가한 것은 출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천한 가문에서 출가한 천한 자라도 모든 땔감에서 불이 붙듯이, 가르침을 실천하여 깨닫는데 차별이 없음을 말합니다.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습니다.
“백조와 백로와 공작,
코끼리와 반점 있는 사슴
모두가 모습은 달라도
사자를 두려워한다.
사람들 가운데는 왜소하더라도
지혜가 충분한 자가
참으로 위대하니 몸뚱이만
커다란 바보와는 다르네.”(S21.6)
게송에서 백조는 일반적으로 수행승을 상징합니다. 양가집 자제의 이미지입니다. 공작은 화려한 모습으로 인하여 재가의 삶을 사는 자를 상징합니다. 코끼리와 사슴 역시 양가집 자제들의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모두 사자를 두려워 합니다. 밧디야가 비록 난쟁이로서 볼품 없고 혐오감을 주긴 하지만 깨달은 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자와 같습니다. 아무리 덩치가 크더라도 지혜가 없다면 몸뚱이만 큰 바보와 같다고 했습니다.
쭐라 빤따까( cūḷapanthaka) 이야기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의 이미지는 자애롭습니다. 모든 계급에 대하여 차별 없이 대했습니다. 특히 사성계급에도 속하지도 못하는 불가촉천민출신에 대해서도 자상하게 대했습니다. 난쟁이 밧디야가 대표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 사람들이 혐오하는 나병환자에게도 자애의 마음을 내었습니다. 이는 우다나 ‘나병환자 쑵빠붓다의 경(Ud.51)’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자상한 부처님으로서 이미지가 테라가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십련시집에 있는 ‘쭐라 빤따까이야기’입니다.
쭐라 빤따까는 원래 머리가 아둔해서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가르침의 싯구를 한 구절도 외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형인 마하 빤따까에게 쫓겨나 승원의 문지방에서 울면서 서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상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서는 ‘라조하라낭(rajoharaṇaṃ)’이라는 매우 간단한 단어를 알려 주었습니다. 이 말은 ‘티끌제거’라는 뜻입니다. 자상한 부처님으로 쭐라 빤따까의 십연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계발은 더디었으니,
예전에 나는 멸시당했다.
형은 나를 쫓아내면서,
‘너는 이제 집으로 가라.’고 했다.”(Thag.557)
“형에 의해 쫓겨난 나는
승원의 문지방에서,
교법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고
우울한 마음으로 서 있었다.” (Thag.558)
“세존께서 그곳에 오시어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나의 팔을 잡고 나를
승원으로 데리고 들어가셨다.” (Thag.559)
“스승께서는 나를 애민히 여겨
‘한 쪽으로 물러나 잘 가호하여
이 청정한 것에 마음을 정립시켜라.’라고
발을 닦는 천조각을 건네주었다.” (Thag.560)
“스승의 말씀을 듣고서는
가르침을 기뻐하며 지냈고,
최상의 의취를 얻고자
실로 나는 삼매를 닦았다.” (Thag.561)
“전생의 삶을 나는 알았고,
하늘눈은 청정해졌다.
세 가지 명지를 성취하였으니,
깨달은 님의 교법이 나에게 실현되었다.” (Thag.562)
“빤따까는 천명으로
자신을 나투면서,
때를 알려줄 때까지
즐거운 암바바나 숲에 앉아 있었다.” (Thag.563)
“그러자 스승께서는 내게
때를 알리는 사자를 보내셨으니,
때가 알려지자,
허공을 통해 나는 다가갔다.” (Thag.564)
“스승의 양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내가 앉는 것을 아시고,
스승께서는 공양을 허용하셨다.” (Thag.565)
“일체세계의 보시를 받는 님,
헌공의 수용자이신 님,
인간의 복전이신 님께서는
그 공양을 받이들이셨다.” (Thag.566)
십연시 쭐라 빤따까에 대한 인연담을 보면 형인 마하 빤따까에 의해서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형 마하 빤따까는 먼저 출가 했습니다. 마하 빤따까 장로는 거룩한 경지를 얻고 나서 최상의 경지를 누리다가 “어떻게 쭐라 빤따까도 이 행복을 누리게 할 수 있을까?”라 생각했습니다. 이에 자신의 외할아버지인 부호에게 쯜라 빤따까를 출가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마하 빤따까와 쭐라 빤따까 형제는 출생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대인도에서 허용되지 않았던 ‘역모혼’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역모혼이란 부유한 집 딸과 하인의 불륜관계로 맺어진 관계를 말합니다. 이는 부자집 아들과 하녀의 ‘순모혼’과는 정반대입니다. 일반적으로 역모혼이 되면 하층 카스트로 전락됩니다. 여기서 ‘빤따까’란 ‘길에서 얻는 자식’이라는 뜻입니다.
테라가타에서 마하 빤따까에 대한 게송은 테라가타 팔련시집 Thag.510-517에서 소개 되어 있습니다. 빤따까 형제의 어머니는 라자가하 시에서 부유한 딸이었는데 노예와 불륜관계에 있었습니다. 발각되자 둘이서 도망갔습니다. 도망 가서 첫 아들의 출산을 친정에서 낳고자 했으나 남편이 만류했습니다. 그럼에도 친정에서 낳고자 길을 나섰는데 그만 길에서 아이를 낳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빤따까가 길에서 나은 아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라조하라낭(rajoharaṇaṃ)
동생인 쭐라 빤따까는 머리가 우둔해서 시를 단 한줄도 외울 수 없었습니다. 형이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는데 동생도 출가시켜서 자신의 누리는 행복을 맛 보게 해 주고자 했습니다. 형은 동생에게 시를 하나 외워 보라고 했습니다. 그 게송은 인연담에 따르면 “훌륭한 향기를 지닌 홍련화처럼, 연꽃은 아침에 피어난 향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허공에서 태양처럼 작열하는, 광휘를 비추는 앙기라씨를 보라.”라는 게송입니다.
동생 쭐라 빤따까는 짤막한 이 게송을 단 한줄도 외울 수 없었습니다. 넉달이 지나도록 외울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의미를 파악해도 외울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형 마하 빤따까는 “너는 이 가르침을 배울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여기서 나가라”라고 했습니다.
형으로부터 버림 받은 쭐라 빤따까는 승원의 한켠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부처님이 애민히 여겨 “빤따까여, 그대는 왜 울고 있는가?”라며 물어 보았습니다. 이에 쭐라 빤따까는 “형이 저를 쫓아냈습니다.”라며 울면서 말했습니다. 부처님은 낙담한 쭐라 빤따까를 위로하면서 외울만한 말을 하나 알려 줍니다. 그것이 “라조하라낭(rajoharaṇaṃ)”입니다.
부처님은 쭐라 빤따까에게 “빤따까여,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그대는 나의 교법에 출가했다. 와서 ‘라조하라낭(rajoharaṇaṃ)’ ‘라조하라낭(rajoharaṇaṃ)’ 이라고 이것을 붙잡고 정신활동을 기울여라.”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라조하라낭은 ‘티끌제거’라는 말입니다.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깨끗한 천조각을 하나 만들어 주었습니다.
쭐라 빤따까는 부처님으로부터 천조각을 받고 나서 “라조하라낭, 라조하라낭,..”라며 손우로 어루만지며 외웠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루만지면 만질수록 오염된 것들이 생겨나 접시를 닦은 행주처럼 되었습니다.
쭐라 빤따까는 가장 간단한 단어 라조하라낭을 반복적으로 외우면서 정신활동을 기울이자 놀랍게도 궁극적인 앎이 생겨났습니다. 이에 대하여 인연담에서는 “이 천조각은 원래 청정했다. 이 업으로 획득된 몸 때문에 오염되어 달리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무상하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 마음도 그렇다.”라 되어 있습니다.
쭐라 빤따까는 하나의 천조각을 들고 “티끌제거, 티끌제거,…”라고 염하면서 무상에 대한 지각이 생겨났습니다. 이에 대하여 인연담에서는“괴멸에 대한 쇠퇴를 확립하여 그 가운데 선정을 거듭나게 해서, 선정에 입각해서 통찰을 확립하여 분석적인 앎과 더불어 거룩한 경지를 얻었다.”라 되어 있습니다. 천조각 하나를 가지고 “티끌제거, 티끌제거,…”함으로 인하여 아라한이 된 것입니다.
쭐라 빤따까 이야기를 보면 대승경전에서 말하는 ‘주리반특가’이야기와 유사합니다. 주리반특가 이야기의 원형이 다름 아닌 테라가타입니다. 테라가타에서 쭐라 빤따까 이야기는 머리가 나쁜 바보 같은 자라도 무엇이든지 한가지에 집중하면 깨달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간단한 게송하나 외우지 못해 형에게 쫓겨 났으나 이를 애민히 여긴 부처님이 가장 간단한 단어 ‘라조하라낭(rajoharaṇaṃ)’을 지속적으로 외우게 하여 그 외우고 집중한 힘으로 인하여 선정에 들고 마침내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보면 희망을 가지게 합니다.
아무리 아둔한 자라도 지극정성으로 집중했을 때 도가 트임을 말합니다. 그런데 테라가타 해제에 따르면 쭐라 빤따까이야기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자상한 부처님으로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상한 부처님으로서
부처님 당시 초기에는 양가집 자제들이 주로 출가했습니다. 테라가타 해제에 따르면 테라가타에 실려 있는 260명의 제자들의 출신성분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빠알리성전협회 리스 데이비즈 부인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테라가타에 등장하는 인물분포 중에 양가집 자제에 해당되는 제자는 바라문이 118명, 왕족이 60명, 지주 7명, 상층계급(부호, 상인) 54명으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 합니다. 그래서 초기경에서 “양가의 자제들이 당연히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듯이, 그 위없는 청정한 삶을 현세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라는 정형구가 나왔을 것입니다.
초기경전에서 양가집 자제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에 반하여 천민이나 노예 출신은 극히 드뭅니다. 테라가타에서 천민출신은 10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처님 당시 출가자들의 상당수가 바라문, 왕족, 부호의 자제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급에 있어서 차별이 없는 부처님 교단에서 모든 땔감에서 불이 붙듯이, 노예나 천민 중에서도 깨달은 자가 나왔습니다. 그런 사람 중의 하나가 앞서 언급된 난쟁이 밧디야, 나병환자 쑵빠붓다, 그리고 머리가 아둔한 쭐라 빤따까입니다. 이 밖에도 꽃을 청소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청소부 출신 쑤니따(Thag.620-631)도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들 하층 계급출신들에게 자애의 마음으로 자상하게 대했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감화를 받았습니다. 특히 형에게 쫓겨나 울고 있는 쭐라 빤따까에게 “세존께서 그곳에 오시어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셨다.”라 한 것에서 자상한 마음을 극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금강경에서 말한 사생자부로서 인간적인 부처님의 면모를 여실히 느끼게 해 주는 대목입니다.
2017-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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