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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업장소멸 이라는것이 가능한것인지요묻고 답하고 모음
질문 감사합니다. 생각나는 대로 간략하게 답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업(의도적 행위)과 업의 과보의 전개는 너무 복잡다단하여 몇 줄이나 몇 페이지의 글이나 몇 권의 책으로 다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일체지자인 부처님도 업에 대한 질문을 받으시면 문을 닿고 좌정하여 한참을 숙고하신 뒤에 대답하신다고 북방 아비달마를 집대성한 대비바사론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저는 업에 대한 설명은 상좌부에서 설하는 업설이 간단명료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5장 §§18~33에는 업을 16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일독을 권합니다. 이것은 청정도론 XIX.14~16에서 12가지로 업을 설명한 것을 그대로 차용하여 업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업은 그 역할 혹은 기능에 따라서 ⑴ 생산(janaka)업, ⑵ 돕는(upatthambhaka) 업, ⑶ 방해(upapiil*ka)업, ⑷ 파괴(upaghaataka)업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생산업이란 과보를 생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이것은 업의 기본 성질입니다. 돕는 업은 다른 업이 과보를 생기게 할 때 그 과보를 잘 생겨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며, 방해업은 반대로 다른 업이 과보를 생기게 할 때 그 과보가 생기는 것을 방해하는 업이요, 파괴업은 다른 업이 과보를 생기게 할 때 그 과보가 생겨나지 못하도록 파괴해버리는 역할을 하는 업입니다. 그러므로 특정 업이 방해업의 역할을 하면 이것은 다른 업의 과보가 생기는 것을 방해합니다. 예를 들면 특정한 때에 저지른 도둑질의 업의 과보가 나타나서 빈곤해지거나 재물을 잃게 될 때 다른 때에 지은 보시의 업의 과보로 그 빈곤의 정도나 아주 약해지거나 재물을 아주 적게 잃게 되는 것을 들 수 있고, 반대로 보시의 업의 과보가 나타나서 재물을 많이 모으거나 부유하게 될 때 다른 떼에 지은 도둑질의 과보로 그 좋은 과보가 줄어들게 되는 것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파괴업은 다른 업의 과보가 진행되려할 때 그 과보의 진행을 완전히 파괴시켜버리는 역할을 하는 업입니다. 이렇게 음미해보시면 우리가 여러 생을 통해서 짓는 무수한 다양한 업들의 다양한 과보들은 이렇게 서로서로가 생산, 도움, 방해, 파괴의 역할을 하면서 업들과 과보들의 관계를 진행시켜나간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므로 참회하거나 봉사하거나 청정하게 사는 것은 이러한 유익한 업들이 생산, 도움, 방해, 파괴의 역할을 해내어서 나쁜 업들의 과보가 진행되는 것을 막거나 파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를 죽이고, 아라한을 죽이고, 부처님 몸에 피를 내고, 화합승가를 파하는 다섯 가지 중죄(오무간죄)는 반드시 이러한 악업의 과보로 다음생에 악처 혹은 지옥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외의 업은 그 업에 대한 과보가 진행될 때 다른 아주 유익한 업들에 의해서 그 과보의 진행이 방해받거나 파괴될 수 있다고 상좌부에서는 설합니다. 분명한 것은 업은 반드시 그 과보를 수반하는 것이지만 그 과보의 진행은 다른 업들에 의해서 방해도 받을 수 있고 그 과보의 진행은 파괴될 수도 있습니다. 주석서들에서는 분명히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비바사론에 의하면 이러한 무수한 업들과 업들의 과보들과 업들의 강약과 업들 상호간의 관계는 너무도 복잡다단하여 일체지자인 부처님께서도 이를 다 설하시기가 어려운 것일 겁니다. 이처럼 우리가 짓는 유익한 업은 다른 나쁜 업의 과보의 진행을 방해하거나 파괴할 수 있다고 청정도론 등의 상좌부 주석서들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업은 일종의 운명설이 되어서 인간을 구속하고 말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항상 유익한 업을 짓기 위해서 노력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은 유익한 업은 이전에 지은 해로운 업들의 과보가 진행되는 것을 방해하고 파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초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법우님의 질문을 나름대로 설명해보겠습니다. --------------------------------------------------------------------------------- 그렇다면 선업의 공덕으로 악업이 소멸될수있는것인지요. 5가지 빠라지카는 절대되돌릴수없음은 알고있습니다.예를들어 데바닷따나 아자뚜삿뚜같은왕은 참회하였으나 바로 지옥으로 떨어졌음을 경전에서 말씀하셨지요 ---------------------------------------------------------------------------------- 이미 설명하였듯이 청정도론이나 아비담맛타상가하 같은 상좌부 주석서들에 의하면 선업은 악업의 과보의 진행을 방해하거나 파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은 너무 복잡다단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방해하고 파괴하는 가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빠라지까가 아니고 무간업(aanatariya-kamma)일 것입니다. 빠라지까는 비구들에게 해당하는 살도음망의 4가지 바라이죄를 말하는데 이것은 물론 악업임에는 틀림없고 이것을 범한자는 비구가 될 수 없어서 되돌릴 수 없다고 표현하지만 이것과 데와닷따나 아자따삿뚜의 무간죄와는 정확히 구분되어야합니다. 데와닷따는 부처님몸에 피를 내게하는 무간죄를 범했고 아자따삿뚜는 아버지 빔비사라 왕을 죽인 무간죄를 범했지만 비구계의 살도음망은 무간죄는 아닙니다. 물론 비구가 살인, 관의 형벌을 받는 중한 도둑질, 음행, 도과를 증득했노라는 대망어를 범하면 비구로서의 자격을 잃게 되고 이것은 아주 무거운 악업이지만 이것과 오무간죄는 구분되어야합니다. ------------------------------------------------------------------------ 그렇다면 한국불교에서 행하는 흔히 업장소멸의식. 기도 등등이 가능한 이야기인지요 ------------------------------------------------------------------------ 청정도론과 아비담마 길라잡이의 설명을 기본으로 보자면 ... 저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물론 진정한 마음의 참회를 하지 않고 단지 형식적으로 거행하는 의례의식 자체는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행하는 진정한 참회의식과 기도와 수행이라는 선업을 지으면 이것은 이전에 지은 불선업의 과보가 진행될 때 그것의 진행을 약하게 하는 방해업과 그 과보의 진행을 파괴해버리는 파괴업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초기불교와 상좌부의 업설을 음미할 때마다 제가 내리는 결론은 우리는 항상 유익한 업(선업, kusala-kamma)을 짓기 위해서 노력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어떠한 불선업을 지었든지 간에 선업은 불선업의 과보가 진행될 때 그것을 방해하고 파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봉사하고(보시) 건전하게 살기 위해서(지계)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부처님이 제시하신 이러한 기본덕목에 충실하다면 불선업의 과보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처럼 보시와 지계를 튼튼히 하면서 정혜쌍수 혹은 지관수행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하는 것이 불자의 기본적인 삶의 태도이며 이것은 팔정도의 실천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한번 적어봤습니다. 질문에 조금이라도 답변이 되었으면 합니다. 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위에서 말한 아비담마 길라잡이 5장과 청정도론 19장의 설명을 참조하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각묵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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