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통/인문·예술·종교·철학

한국 불교계의 신흥종단 성립과 현황 / 윤승용

우공(友空) 2026. 5. 2. 22:51

출처  https://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20990

 

한국 불교계의 신흥종단 성립과 현황 / 윤승용 - 불교평론

1. 시작하는 말삼국시대에 전래한 한국불교는 고려 때는 5교9산(五敎九山)과 11종(十一宗)으로 전개되었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숭유배불로 인해 7종(七宗)에서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축소되었

www.budreview.kr

아래는 원문 , 밑줄 강조는 내가

 

특집 | 한국의 신종교 지형과 미래

1. 시작하는 말

삼국시대에 전래한 한국불교는 고려 때는 5교9산(五敎九山)과 11종(十一宗)으로 전개되었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숭유배불로 인해 7종(七宗)에서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축소되었고, 결국 선종 중심으로 단일화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불교의 기능은 거의 피폐하여져 사찰은 산중화되고 승려는 천민으로 떨어져 도성 출입마저 금지되었다. 이처럼 무불(無佛) 시대에 가까운 조선 말엽, 일단의 불교도들에 의해 새로운 불교 단체들이 조직되기 시작했다. 이강오의 《한국신흥종교총감》, 무라야마 치준(村山智順)의 《조선의 유사종교(朝鮮の類似宗敎)》에는 광복 이전 10여 개의 불교계 단체가 열거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묘련사(妙蓮社)를 들 수 있다. 묘련사는 1872년에 보월 최성환(1813~1891) 거사와 그를 따르는 정극경, 유성종 등 100여 명이 서울 삼각산 감로암에서 ‘관세음보살 칭명염불’ 정진을 위해 조직한 신행 모임이었다. 보월 거사는 《제중감로》를 지어 관음신앙을 강조했다. 묘련사는 선음즐교, 법련사, 정일교 등으로도 불렸다. 법주인 최성환은 무인 출신임에도 문학과 지리학에 밝았고 정치적 식견도 뛰어난 경세가로 알려졌다. 

광복 이전의 불교 단체로는 3·1 만세운동 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백용성 스님이 불교 현대화를 꾀하며 창건한 대각교(大覺敎)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 다만 《조선의 유사종교》는 대각교를 유사종교로 분류하고 있다. 이 자료집에는 영각교, 불교극락회, 감로법회, 원융도, 원각현원교 등의 이름도 보이는데 이는 모두 전통 사찰의 포교당들이다. 이 밖에도 1916년에 시작된 불법연구회(원불교 전신)와 1874년에 창시된 금강도(현 金剛大道)는 독립적인 교단이었고, 정도교(正道敎)는 각세도(覺世道)라는 신종교 계통이며, 광화교(光華敎)와 같은 단체의 이름도 보인다.

광복 이후 불교계는 1962년 제정된 ‘불교재산관리법’에 따라 18개 종단으로 연합체를 구성했다. 그 중심은 대한불교조계종과 한국불교태고종이었으며, 나머지 16개 종단은 신흥 불교 계열이었다. 이들은 대략 법화, 화엄, 미륵, 밀교, 정토, 약사, 비구니 계열로 구분된다. 그러나 1987년 ‘전통사찰보존법’이 시행되면서 새로운 종단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그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며 종지·종풍·종체를 구비한 곳은 드물다. 심지어 무교(巫敎) 계통이 혼입되거나 종단의 명칭이 중복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를 상세하게 거론하기 어려우므로 이 글에서는 대표적인 신흥종단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불교계 주요 신흥종단의 현황

1) 법화계 종단

 

(1) 대한불교천태종(大韓佛敎天台宗)

본디 천태종은 중국의 지자(智者) 대사가 천태산에서 득도한 후 새로운 불교 운동을 일으킨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천태종을 개종한 데서 비롯된다. 대한불교천태종은 의천을 종조(宗祖)로 삼고 있으며, 현대 종단을 실질적으로 건설한 상월원각(上月圓覺, 朴上月, 1911~1974) 스님은 중창조(重創祖)로 불린다. 상월 대조사는 일찍이 15세에 구도의 길에 나서 전래의 선도(仙道)를 닦았으나, 선도가 현대 과학을 능가할 수 없음을 깨닫고 불법(佛法)에 귀의했다고 전한다. 1942년에는 중국에 건너가 불교 성지를 순례하였고, 1945년 귀국하여 소백산에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전념하였다. 1951년 그가 깨달음을 얻은 후에 수복불교(受福佛敎), 구세불교(救世佛敎), 생산불교 등을 내세우며 새불교 운동을 전개했으며, 오늘날 종단의 3대 지표인 애국불교, 생활불교, 대중불교를 선포하였다. 

천태종은 1966년 대각불교(大覺佛敎)로 창립되었으나, 1969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했다. 소의경전은 《묘법연화경》과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이며, 개인적 완성과 불국토(佛國土) 건설 및 법성체결합(法成體結合)을 종지(宗旨)로 한다. 본사인 구인사(救仁寺)는 한국 최대 규모의 사찰이며, 치병(治病)과 소원성취에 영험 있는 기도처로 유명하다. 조직은 종정(宗正) 중심제이며 승려들은 주경야선(晝耕夜禪)의 승풍을 견지한다. 구인사 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신도들이 기도·염불할 수 있는 현대식 회관을 건립하고 있다. 전국에 200여 사찰이 있고, 스님 500여 명이 소속되어 있다. 학교법인 금강대학교와 사찰별 불교대학을 운영 중이며, 격주간 〈금강신문〉과 월간지 《금강》을 발행하고 있다.

(2) 대한불교불입종(大韓佛敎佛入宗) 

우리나라에서 법화 계열 종단이 공식적으로 성립된 것은 1945년, 대원광(大圓光) 김정운이 조직한 ‘대승불교법화회’이다. 이 최초의 법화종단은 2파 3회 4종으로 분립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1965년 이홍선(李泓宣, 1905~1978) 스님이 서울 숭인동 묘각사에서 독자적으로 대한불교불입종을 세웠다. 홍선 스님은 1932년 조선불교 선교양종의 교정인 김경운 스님에게 득도하고, 1940년 법화 신앙의 근본 도량으로 묘각사를 세웠다. 그는 법화 종단의 분열 과정에서 통합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인 인물로 평가된다. 또한 민족사관이 강했던 인물이었다고 전하며, 《불입종의 생활신조》 《불종대의》 《원비경》을 비롯해서 17권의 저술을 남겼다. 대한불교불입종이라는 명칭은 1972년에 정해졌고 1988년 5월에 ‘대한불교관음종’으로 종명을 변경하였다. 법화계 종단에서는 모두 법화경 제목을 봉창(奉唱)하는데 이 종단에서는 독특하게 법화경의 범음(梵音)인 ‘나모 살달마 푼다리카 수트람’을 주문으로 염송한다. 주요 행사는 다른 불교 종단들과 유사하나 음력 10월에 지내는 ‘신곡제(新穀祭)’가 특징적이다. 1973년부터 발행한 월간지 《범성(梵聲)》이 있고, 법화사상 연구원과 유치원 등을 운영하며, 85개 사찰에 승려 230여 명이 소속되어 있다. 

(3) 대한불교법화종(大韓佛敎法華宗)

대승불교법화회에서 분열된 일승회, 정각회, 현정회의 삼회(三會) 중 대한불교정각회의 비구니 혜일(正覺, 金甲烈, 1904~1982) 스님이 1946년 5월에 서울 성북동 무량사(無量寺)에서 창립한 종단이다. 혜일 스님은 해방 후 법화사 등에서 법화 신앙을 공부했고, 대승불교법화회에서 유일한 여성 지도자로 참여했다. 이후 법화계 종단의 분열 속에서 남녀평등권을 주장하며 1956년 자신이 건립한 성북동 무량사(1946년 창건, 1971년 대법정사로 개명)에서 ‘대한불교정각회’를 세웠다. 특히 기도를 중시하는 승풍으로 유명했다. 1960년에는 대한불교법화종 유지재단으로 법인화하였으며, 전통사찰보존법 이후 1991년, 사단법인으로 등록을 변경했다. 1999년, 원융학림을 창립하여 《법화경》 일승 사상을 계승하며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총무원은 대전광역시 소재 대각사에 있으며 1983년부터 〈법화종보〉를 발간해 왔다. 전국에 1,500여 사찰과 1,500여 스님이 소속해 있고,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가입되어 있다. 본존불은 십계만다라(十界曼多羅)로 하고 석가모니불을 봉안한다. 소의경전은 《묘법연화경》이며, 신도들은 ‘나무묘법연화경’을 염송한다. 

(4) 한국불교법화종(韓國佛敎法華宗)

대승불교법화회에서 갈라져 나온 북파의 김혜선(속명 金云雲, 1904~1989) 스님이 창립했다. 혜선 스님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 법화 신앙에 귀의한 후, 일본의 법화 종단인 본문법화종(本門法華宗) 본능사 포교당을 개설하고 본화회(本華會) 등의 신행단체를 만드는 등 활발한 법화 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대승불교법화회에서 함께하던 친형 김혜운(속명 金正雲)이 1947년에 입적한 뒤, 북파를 이끌고 한국불교법화종을 세웠다. 1969년에는 불교재산관리법에 따라 ‘한국불교법화종 총본원(總本院)’으로 문화공보부에 등록했다. 그는 법화 신앙에 재래의 불교 신앙이나 민간신앙이 결부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등 정통의 법화 종단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한다. 현재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는 가입하지 않았고, 종단 총본원은 1949년에 창건된 돈암동 법화사(法華寺)였다가 현재는 강화도 길상면 법화사로 이전하였다. 이 절의 불단(佛壇)에는 삼보(三寶)라 하여 왼편에 다보불(多寶佛)을, 중앙에는 ‘묘법연화경’ 제자(題字)를 탑 형태로, 그  오른편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 소의경전은 《묘법연화경》 《무량의경》 《관보현보살행법경》이다. 소속 사찰 60여 개소에, 스님은 60여 명으로 알려진다. 

(5) 대한불교일승종(大韓佛敎一乘宗)

법화계 종단의 이합집산 과정에서 가장 늦은 1968년에 창립된 종단이다. 창립자는 1939년 일본 법화계 종단인 본문법화종의 본능사에서 공부하며 법화 신앙에 귀의한 혜정(惠正, 최호민)과 예혜교 (藝惠敎)로, 두 사람이 종정과 총무원장을 맡아 이끌었다. 혜정 법사는 법화계 종단이 남/북파로 나뉘고, 그중 남파 계통의 스님들이 서울 성북동 일승사(一乘寺)에서 일승불교현정회(一乘佛敎顯正會)를 만들었을 때 이사장을 맡기도 하였다. 1969년에는 ‘대한불교일승종포교원’으로 문화공보부에 등록하였고 1973년에는 ‘대한불교일승종’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현재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가입되어 있지는 않다. 총본산인 일승사는 1972년 2대 종정에 취임했던 송묘익(宋妙翊)이 1945년 창건한 원구사(圓俱寺)를 1952년 일승사로 이름을 바꾸어 종단에 기증한 것이다. 불단(佛壇) 중앙에 석가모니불과 그 위로 삼보불(三寶佛)을 모시고 오른편에 따로 4대 보살을 모셨다. 사단법인 대한불교일승종총무원 산하에 약 350개 사찰과 500여 명의 승려가 활동한다고 알려져 있다. 

2) 화엄계 종단

(1) 대한불교원효종(大韓佛敎元曉宗) 

1963년 김경택(金敬澤) 스님을 대표자로 하여 ‘대한불교원효종포교원’을 창립하고 문공부에 등록하였지만, 조직의 체계가 정비된 것은 2대 종정 해인(海印) 정수용(丁壽鎔, ?~1972) 스님 때부터였다. 해인 스님은 경주 기림사(祇林寺) 주지를 역임했고, 1962년 불교재산관리법의 제정 이후 등록이 어려워지자 법화종에 가입했다가 1965년 원효종의 종정이 되었다. 1967년에는 총본산을 경상북도 월성군의 망월사(望月寺)로 옮겼고, 1977년 ‘대한불교원효종’으로 개명하였다. 창종 초기부터 세력이 급속히 팽창했는데, 이는 당시 불교계 내부의 고질적인 분쟁과 달리 원효 사상을 중심으로 종지(宗旨)를 뚜렷이 했기 때문이다. 또한 수행, 학식, 원력을 겸비한 이법홍(李法弘) 스님을 영입했던 것도 교세 팽창의 요인이었다. 그러나 1968년 종단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던 법홍 스님이 도일(渡日)한 이후로 10여 년에 걸쳐 종권(宗權) 다툼에 휘말렸다. 이 분쟁은 종단의 실세로 자리 잡고 있던 역술인들과의 갈등 양상을 띠었으나, 법홍 스님의 귀국 이후 정상화되었다.

소의경전은 원효의 《금강삼매경론》 《기신론해동소》 《법화종요》 《열반종요》 등이며, 율전은 《보살계본지범요기》이다. 총무원은 서울의 안양암(安養庵)이며, 총본산은 망월사(望月寺)이다. 특히 각 도의 교구에 비구니 교구를 설치하고 있으며 ‘원효불교대학’을 인가받아 운영하고 있다. 산하에 원효학연구소와 원효사상실천승가회가 있다. 전국적으로 700여 사찰과 1,100여 명의 승려가 있으며, 현재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원 종단이다.

(2) 대한불교화엄종(大韓佛敎華嚴宗)

1965년에 능해(凌海 한석영, 1892~1970) 스님 등이 인천 해광사(海光寺)에서 창종했다. 1966년에 ‘대한불교화엄종포교원’으로 등록했으며 1973년에 ‘대한불교화엄종’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능해 스님은 21세 때 개성에서 화엄 법주(法主) 이회명(李晦明, 日昇)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1929년 인천에 약사암(藥師庵)을 짓고 화엄종 창종의 기틀을 닦았으며, 해방 후에는 일본 화엄종 사찰 해광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1962년 불교재산관리법이 시행되자 대한불교법화종에 가입했으나 1966년, 독자적으로 화엄종을 창설했다. 

그는 원효와 의상의 화엄 종맥을 되살리고 화엄 법주 이회명의 유훈을 받들어서 종(宗)을 부활한다고 주창했다. 소의경전은 《화엄경》이며, 대승불교 보살행 실천과 대중 교화, 지관(止觀) 수행과 견성성불(見性成佛), 염불문(念佛門)의 별개(別開)와 왕생 발원을 종지로 표방하고 있다. 능해 스님은 독신 비구였으나 비구-대처의 구분에 매이지 않고 생활불교의 길을 택하여 대처(帶妻) 종단 체제를 수립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가입된 것으로 나오지만 종단 홈페이지에 연동되지 않고, 총본산 약사사 미타전[추모관]만 공개되고 있다. 화엄승가장학재단과 대한불교화엄종 장학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소속한 사찰은 70여 개소에 승려는 90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3) 대한불교총화종(大韓佛敎總和宗)

1950~60년대에 걸쳐 지속된 비구와 대처의 분규를 종식하고 이들을 화동(和同)시키려는 목적으로 전라도 지역에서 결성된 ‘대한불교화동위원회’에서 비롯된 종단이다. 이 위원회는 비구-대처 분규에서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은 승려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그러나 1960년 4월의 화동회 창립 이후에도 분규가 가라앉지 않자, 모든 종파와 제휴하고 종파를 초월하여 현실과 진리가 일치하는 생활불교의 구현을 기치로 내걸고 같은 해 12월 ‘대한불교총화회’라는 명칭의 불교 단체를 등록함으로써 종단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어 9년 후인 1969년 추강(秋岡)  최득연(1893~ ?) 스님이 ‘대한불교총화종’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문공부에 등록했다. 1998년 남양주시 천마산 수진사로 이전했던 총무원은 현재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에 있고, 총본산은 충북 영동의 실상사이다. 전국에 1,000여 개의 교당과 1,300여 명의 교직자가 있고, 미국과 일본 등 해외에도 교당을 두고 국제 포교에 힘쓰고 있다. 현재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가입되어 있다. 

3) 밀교계 종단

(1) 대한불교진각종(大韓佛敎眞覺宗)

밀교계 종단인 진각종은 회당 손규상(孫珪祥) 대종사에 의해서 1947년 6월 개종되었다. 종단 측은 “이 땅의 풍토성(風土性)과 혈지성(血智性)에 맞는 전통 종교를 이 시대 대중의 근기에 맞도록 새롭게 한 밀교 중흥”의 종단이라고 자평한다. 손규상이 자신의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구병(救病) 행각에 올랐다가 대각(大覺)한 후, 1947년 경북 영일군에 참회원(懺悔院)을 설립하였다. 이 참회원은 ‘옴마니반메훔’ 육자진언(六字眞言)을 염송하고 참회하면 병이 낫는다는 그의 경험에서 따온 명칭이라고 한다. 

그 후 교세가 확장되자 1949년 ‘밀교금강승심인불교재가보살정도회(密敎金剛乘心印佛敎在家菩薩正道會, 약칭 心印佛敎)’를 설립하였고, 1954년에는 진각종보살회(眞覺宗菩薩會) 유지재단을 설립하였다. 1963년에는 불교재산관리법에 의해서 문화공보부에 등록했고 1973년에 ‘대한불교진각종’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신라시대 명랑(明郞)법사가 개창한 신인종(神印宗)을 그 연원으로 하고, 《금강정경》(金剛頂經)을 비롯하여 《대일경》 《대승장엄보왕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부처님 가피에 의해서 삼밀관행(三密觀行)을 실천하고 즉신성불(卽身成佛)하는 것을 종지(宗旨)로 삼고 있다. 

여타 종단들과 달리 불상을 모시지 않고 육자진언을 한글로 새겨 모신다. 이 종단의 교역자[정사·전수]는 삭발하지 않으며 전통 승복이 아닌 평복을 입고 생활한다. 특히 불교의 현대화·생활화를 주창하여 음식 불공(佛供) 대신 현금을 희사하는 불공을 장려하고, 조성된 불상에 예불하는 대신 우주에 충만한 법신불(法身佛)에 때와 장소를 구애받지 않는 시시불공(時時佛供), 처처불공(處處佛供)을 강조한다. 남녀 구별하지 않는 교역자 임명이나 관혼상제의 간소화 등 재가 생활불교를 지향한다. 포항의 위덕대학교를 비롯하여 중고등학교·유치원 등의 교육사업과 사회사업이 활발하다. 월간 《진각종보(眞覺宗報)》를 발행하며, 소속 사찰(심인당)은 120여 개소, 교역자(정사·전수)는 250여 명 수준이다. 

(2) 대한불교진언종(大韓佛敎眞言宗)

1954년 진각종(眞覺宗)에서 갈라져 나온 손해봉(孫海捧)이 울산에 대한불교참회당(懺悔堂)을 세우고 재단법인으로 등록하면서 시작되었다. 1963년에 ‘대한불교진언종포교원’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1972년에 ‘대한불교진언종’으로 등록했다. 손해봉은 당숙인 손규상이 1948년 포항에 참회원을 개설할 때부터 밀교적 신앙 체계를 구성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였으나, 1954년 견해의 차이로 독자 노선을 걸었다. 종지(宗旨)나 소의경전은 진각종과 대동소이하나, 진언수행(眞言修行)에서는 대일여래(大日如來) 진언으로 ‘옴 아비라움캄 바쥬라아두밤’을 암송하는 점이 다르다. 종단의 3대 지표로서 불법(佛法)수호, 생활불교, 생산불교를 표방하고 재가(在家) 방편을 수행 원칙으로 지켜왔으나, 2010년 혜천(惠天) 대종사 이후 출가 승려 중심 체제로 혁신했다. 

진언종의 독특한 의례로 ‘호마목(護摩木)’으로 불을 피우고 그 안에 공양물을 던져 넣음으로써 대일여래에게 공양하는 호마 의식, 가지기도(加持祈禱), 관정(灌頂) 등이 있다. 조직으로는 종정, 종리원(宗理院), 종회(宗會), 감사원 등 중앙 조직과 말사(末寺)인 진광원(眞光院)이 있다. 사찰 20개소에 승려 28명 규모이며 현재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가입해 있다.

4) 미륵계 종단

(1) 대한불교미륵종(大韓佛敎彌勒宗)

1942년 9월 전라남도 광산에서 홍원(洪原) 김계주(金桂朱)가 강증산(姜甑山)의 계시를 받고 무교(戊敎)라는 이름으로 창종한 증산교 계통의 신흥종교였다. 김계주는 해방을 예언하고 일제(日帝)의 징용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등 많은 영험을 보였다고 전하며, 1946년에는 무을교(戊乙敎)로 교명을 바꾸고 활동하다가 1950년에 사망하였다. 이후 무을교는 종통을 잇는 교주가 없어 활동을 중단했다가, 무을교 본부에서 수도 중 심령이 통하고 말문이 열린 김홍현(金洪玄) 스님이 1959년에 교주로 추대되면서 호남 지방을 중심으로 교세가 확장되었다, 1964년  ‘대한불교미륵종중앙포교원’으로 개명하여 문공부에 등록하였고, 1977년 ‘대한불교미륵종’으로 종단 명칭을 바꾸었다. 

본존은 미륵불이고, 소의경전은 《미륵상생경》 《미륵하생경》이며, 본산은 전북 고창에 있다. 초대 종정 김홍현은 특히 치병(治病)에 용하여 많은 신도를 확보하였으며, 초기에는 미륵불 외에도 강증산과 김일부(金一夫) 등을 신앙 대상으로 하여 증산교 계통의 신앙을 유지하였다. 미륵불을 주신으로 하여 불교 종단의 외형을 갖추었으나 미륵불이 실제로는 강증산을 의미했다. 1997년 말 통계에 의하면 소속한 사찰 127개소에 승려 134명으로 집계되었으나, 현재는 교세를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2) 대한불교법상종(大韓佛敎法相宗)

일제강점기 대종교(大倧敎)와 관련이 있던 춘강 전영동(春岡 全永東, 1896~1973)과 증산교 계통 미륵불교를 이끌던 최선애(崔善愛) 등이 1969년 전라북도 금산사에서 ‘대한불교법상종포교원’을 만든 것이 그 시작이다. 1970년 같은 이름으로 문공부에 등록했고, 1977년에는 ‘대한불교법상종’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전영동은 대종교에서 활동했지만, 불교·정역(正易)·증산 사상 등에 두루 밝았다고 한다. 초대 종정 전영동이 사망하자 1974년 홍해(弘海) 남궁규(南宮圭, 1894~1976)를 2대 종정으로 추대했다. 남궁규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전국의 명산에서 수도하는 한편, 충남 신도안의 불암사(佛岩寺) 및 서울 삼각산의 구복암(龜福庵) 등 사찰을 건립하고 미륵 기도로써 여러 가지 영험을 보여주었고, 한열(寒熱) 사상으로도 유명하다. 

한열 사상이란, 인간과 천지가 모두 찬 기운과 뜨거운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기운들이 탁해져서 천지간에 객화객냉(客火客冷)이 가득 차 세상이 말세오탁(末世汚濁)에 빠졌다는 것이다. 소위 ‘객화객냉’을 없애고 본래의 상태로 돌아감으로써 천지인(天地人)이 고르게 상합(相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의경전은 《미륵삼부경》 《해심밀경》 《유식법상종요》 《점찰선악업보경》 등이다. 본산은 고려 초기에 개창되고 1970년에 중창된 경기도 안성시 쌍미륵사이며, 소속한 사찰 332개소에 400여 명의 스님이 있다. 〈법상종 종보〉를 발행하며,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원 종단이다.

(3) 대한불교용화종(大韓佛敎龍華宗)

진공(眞空) 서백일(徐白一, 1888~1966)이 1931년 전라남도 구례에 구성사(九聖寺)를 짓고 ‘미륵불교 포교소’를 세운 데서 유래한다. 1935년 하동에 포교당을 짓고 1943년에 상불사와 총림(叢林)을 세웠으며, 1955년 김제에 용화사를 창건하였다. 서백일은 어려서부터 참선(參禪), 준제주송(准提呪誦), 술학(術學) 등을 연마하다가 39세에 강증산의 화현(化現)인 미륵세존을 친견하는 신비체험을 했다고 한다. 

그는 절을 짓고 남녀 수좌(首座)들을 양성하며 1960년대 초반까지 미륵불 출현을 위한 운도공사(運度公事)를 행했다. 그러나 그는 미륵불 출현 이전에 큰 재앙이 있을 것을 예언하며 많은 신도에게 가산을 정리하고 김제 용화사(龍華寺) 주변으로 이주케 하는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한편, 후천곤운(後天坤運)의 음양공사(陰陽公事)라는 명목으로 여러 여성 수좌를 희생시켰으며 1966년에 남성 수좌에게 피살되었다. 

1963년에 ‘대한불교용화종포교원’으로 문화공보부에 등록했고, 1986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용화종의 본산은 1950년에 서백일이 창건하여 비구니 교육 도량이 된 전주 원각사(圓覺寺)이다. 서백일의 사망 사건 이후 사회적으로 큰 곤란을 겪으면서도 오직 재건에 힘쓴 비구니들에 의해서, 현재 원각사는 전주에서 가장 큰 사찰로 변모했다. 또, 용화종 관계자들은 서백일과의 관계를 굳이 거론하지 않고 전통적인 미륵신앙과 의식을 행하며 미륵종단의 길을 걷고 있다. 소의경전은 《미륵삼부경》이며 그 외 모든 경전을 참고하며 수행한다. 15개 내외의 사암이 소속되어 있고,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다.

5) 대한불교보문종(大韓佛敎普門宗)

세계 유일의 비구니 종단이다. 본산인 서울 보문동 소재 보문사는 1115년 고려시대 담진(曇眞) 국사에 의해서 비구니 수련 도량으로 창건되었고, 조선시대에도 여러 비구니에 의해서 개축된 기록들이 있다. 1936년에 이긍탄(李亘坦, 1885~1980) 스님이 주지에 취임하였고, 해방 후에는 송은영(宋恩榮, 1910~1981) 스님이 주지에 취임하여 눈부신 중흥불사(中興佛事)를 이루었다. 그런데 1962년에 출범한 통합종단을 둘러싸고 비구-대처 승가의 대립이 격화되었던 소위 ‘불교정화운동’ 시기에 보문사가 그 소용돌이에 휘말릴 위험에 처하자, 긍탄·은영 두 스님은 1971년에 재단법인 대한불교보문원을 설립하였다. 이어서 비구니의 수행 환경을 지키고 여성의 권익과 위상을 높여 사회발전에 공여할 목적으로 1972년에 대한불교보문종을 창종하였다. 석가모니불을 교주로 하고 부처님의 이모이면서 최초의 비구니였던 대애도구담미(大愛道瞿曇彌, Mahapajapati-Gotami)를 원조(元祖)로 한다. 설월당 긍탄 스님이 종조이며, 보암당 은영 스님은 중흥조다. 

주지 은영 스님이 30여 년간 불사 중흥과 건물 중창에 전력하여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경주 석굴암을 본뜬 모형 석굴암을 보문사 경내에 조성하면서 큰 부채를 지게 되자 1981년에 자진하는 비극을 겪기도 하였다. 

현재 전국에 말사가 있으나 운영은 대부분 독자적이다. 독보적인 비구니 종단을 유지하면서도 종풍이나 법요의식 등은 조계종과 비슷하며 다른 종단 비구니들과의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소의경전은 《묘법연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으로 하되, 기타 대승 경전의 연구도 제한하지 않는다. 계율은 비구니계와 보살계를 수지하며, 비구와 관련된 계율은 제외하고 있다. 일찍부터 양로원, 어린이집 등 복지 활동을 활발하게 벌여 왔고, 소속된 사찰은 40여 개이며 200여 명의 비구니 스님이 있다. 미국과 일본 등 해외에도 국제 포교를 위해 6개소의 사찰을 운영하고 있다. 간행물로 월간 《보문》이 있다.

6) 원불교(圓佛敎) 

동학 최제우, 증산교 강일순 이후 또 하나의 민족종교로 탄생한 신흥종교이다. 소태산(少太山) 박중빈(1891~1943)이 26세 되던 1916년 자수자각(自修自覺)으로 큰 깨달음을 얻고 전라남도 영광에서 창설하였다. 그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선언하여 불교 교리의 시대화·대중화·생활화를 주장하였다. 교단 창설 초기인 1917년에 저축조합을 결성하고 금주, 금연, 소비 절약, 공동 출역, 시미운동(匙米運動)을 전개하여 상당한 기금을 모았다. 그 자금으로 간척사업을 하여 원불교 창립의 재정적 기초를 다지고 ‘동정일여 영육쌍전(動靜一如 靈肉雙全)’의 정신을 구현하였다. 초기 교단 작업을 이룬 후 5년에 걸쳐 교리를 정리하고 1924년에 ‘불법연구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포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제2대 종법사인 정산(鼎山) 송규가 1945년에 ‘원불교’로 교단명을 바꾸었다. 1946년에 유일학림(현 원광학원재단)을 설립하여 교육사업에 주력하였고, ‘동원도리(同源道理)·동기연계(同氣連契)·동척사업(同拓事業)’ 등 삼동윤리(三同倫理)를 제시하였다. 

불교는 법신불 일원상(法身佛 一圓相)의 진리를 종지로 한다. 사은사요(四恩四要)의 신앙문과 삼학팔조(三學八條)의 수행문으로 정각정행(正覺正行), 지은보은(知恩報恩), 불법활용(佛法活用), 무아봉공(無我奉公)의 4대 강령을 실현하는 것이 목표다. 불상을 신앙 대상으로 하지 않고, 시주·불공을 폐지하여 각자 직업에 종사하면서 교화사업을 전개한다. 주요 경전으로는 《정전》 《대종경》 《불조요의》 《원불교예전》 등이 있다. 전국에 500여 개 교당과 9천여 명의 교직자가 있다. 원광대와 영산대학을 비롯해서 중고등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등을 운영하고 각종 사회복지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3. 불교계 신흥종단의 성격

한국에서 불교 종단을 언급할 때 ‘신흥종교’라는 범주를 적용하는 것은 다소 생소한 개념일 수있다. 그러나 실제로 조계종, 태고종을 제외한 여타 종단의 발생과 그 신행 양식을 보면, 단순히 불교 전통을 계승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 또, 역사적으로 불교가 무속이나 민간 도교 등의 기층 신앙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기 때문에 이들 기층 신앙의 담지자들이 종교단체를 만들 때는 자연스럽게 불교 종단을 표방하는 경우도 많았다. 

예컨대 혹자는 조선조 말 삼각산 감로암에서 결성된 묘련사를 신종교의 효시로 보기도 하는데, 그것은 한국 불교사에 유구한 신행 결사였을 뿐이지, 신종교의 성격은 희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일제하에 조직되었던 대각회나 선학원 등도 신종교 범주에 포함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기본적으로 해방 전후 한국 불교계 자체의 혁신운동이라는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단, 해방 후 소속이 불분명한 많은 사설 사암이 대각회나 선학원 소속임을 표방함으로써 공인을 받으려던 경향이 있었으므로, 현실적인 공인 장치로서의 측면에서 그들도 불교계 신종교 단체로 분류될 수도 있겠다.

일제강점기에 유입된 일본 불교계 신종교들을 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외래 신종교의 범주에 들 뿐, 한국에서 발생한 신종교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일본의 법화계·정토계 신종교들은 조선인을 상대로 포교하는 과정에서 조선인 포교사를 상당수 배출하였고, 결과적으로 그들이 해방 후 법화계 등의 불교 종단을 창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 일제 치하 우리 신종교들 특히 증산계의 많은 분파들이 ‘미륵불교’를 표방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역시 불교계 종단의 창립으로 볼 수는 없다. 물론 그들도 해방 후 사회 적응 과정에서 때로는 공인된 종교의 힘에 의탁할 필요성이 있었고, 때로는 불교로의 개종을 통해서 새로운 종단으로 자리매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용화종·미륵종·법상종 등의 증산계 종단들이라고 하겠다.

불교계 신종교들의 창립은 해방 후 특히 1950년대 이후 비구-대처의 분규 과정에서 빈번했다. 전통적인 선(禪) 수행 불교를 표방하는 비구들이 수행처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대중의 심정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때로는 물리력을 동원하면서까지 전통 사찰들을 장악했던 데 많은 이유가 있다. 한국불교에서 장자 교단의 위치를 확보한 대한불교조계종이 그 내부에 끊임없는 분규가 이어지면서 승려들이 이탈해 나간 과정과도 연관이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새롭게 교단을 세우고자 하면서도 수행법, 소의경전, 신행 양식 등에서 전통을 답습하였기 때문에 불교계 신종교라고 볼 수 없다. 

1980년 당시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가입한 종단은 18개였고 현재는 28개 종단이 가입해 있으나, 1990년대쯤 종단 수가 60개를 넘었다는 자료도 있다. 《한국불교총람》에도 40여 개 종단이 공식적으로 게재된 바 있으나, 모두가 불교 종단으로 공인된 것은 아니며 종교적 뿌리나 신행 양식에서도 상당한 편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불교와 전혀 무관한 신종교들이 불교 종단을 표방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인 사례가 계룡산 신도안의 경우처럼 무당들의 사설 암자가 성장하면서 교단을 이룬 것이다. 결과적으로 불교 종단의 숫자가 많다는 점은 차치하고, 그처럼 종단들이 생겨나는 배경이나 신행 의례(儀禮) 등에 관한 분석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근현대 불교 신흥교단의 특성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불교의 정체성이 모호할 만큼 혼합주의적 교리를 지닌다는 점이다. 둘째, 교단의 역사를 과거로 소급하여 창건을 ‘중흥’의 관점에서 서술하며 정통성을 확보한다. 셋째, 종주의 카리스마에 기반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유지한다. 마지막으로, 조직 결속과 교세 확장을 목적으로 신비체험과 영험 등 기복적 신앙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